스스로의 그림자에 가리워진다는 것은 퍽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이것을 이 감정 무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까. 분노? 열등감? 내가 나에게 분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열등감 또한 그러했다. 과거의 자신에서 나아간 것이 현재의 '나'일 터인데, 열등감 가질리가. 우월감이라면 몰라도. 과거의 '나'의 그림자에 사로잡힌 상대가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부정하고 싶겠지, 아니라고 믿고 싶은걸거야. 가엾게도. "네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한들, 사실이 바뀌진 않아." "닥쳐" 오, 제이슨. 가엾은 작은 울새. 딕은 조용히 혀를 찼다. 남은 온정으로 사실을 알려줘도 그것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다. 그래 너는 옛적부터 그러했지. 딕은 그 어린날의 제이슨을 떠올렸다. 막 로빈이 되던 시절의 너는 또래의 아이들..
아가씨와의 만남은 말 그대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같았다. 달이 뜬 밤, 고담을 청소하는 레드후드는 해가 뜨면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범죄란 때를 가리지 않는 대낮에도 일어나는 법이라 깨어있을 때도 있지만. 그날은 상처도 상처였고 유달리 피곤한 낮이었다. 레드후드라는 아이덴티티를 숨기기 위해 옷만 갈아입은 정도로, 말쑥한 차림새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런 으쓱한 골목에서 다친 사람이 주저 앉아 있디고 한들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불쑥 머리를 든 동그란 그림자에 눈동자만 굴려 쳐다보니 조그만 여자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는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손을 뻗어 부축, 하려 했다. 주저 앉아 있으니 올려다보는 거였지, 일어서면 힌없이 조그만 여자아이가 저를 부축하려고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솟느님이 리퀘하신 내용입니다. "너… 진짜, 내가 다른 말은 안할게. 미쳤냐?" 팀의 스케쥴표를 읽어본 제이슨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연거푸 마른 세수를 한 후에야, 그럼에도 말을 더듬으며 뱉은 말이 그것이었다. 팀은 셔츠 단추를 채우고 넥타이 매무새를 고치며 말했다. "제이슨, 여기선 괜찮은데. 회사에선 그런 말 쓰지 말길 바라." "네에네에, 알아 모시겠습니다. 티모시 회장님." 자켓까지 걸쳐 단추를 잠그던 팀이 껄렁껄렁한 제이슨의 대답에 픽 웃으며, 스케쥴 표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제이슨을 대신하여, 제이슨의 매모새를 고쳐 주었다. 여기, 타이 비틀어졌어. 아, 땡큐. 그제야, 제이슨이 스케쥴 표에서 시선을 떼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나참, 이런건 원래 비서가 해줘야 할일 아니야? 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