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가... 부죠캐... 1290/1724(?) 툭툭? 천장 너머로 들리는 빗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불은 켰지만 밖이 비구름에 어두워 그리 밝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였다.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 이 원룸은 빌라 위의 옥상으로 그것도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균열도 심했고, 무언가 나타나기에 딱 적격의 장소 같았다. 덕분에 이사 오고 며칠 동안은 이불 안에서 벌벌 떨었던 적도 있었다. 그나마 괜찮다고 할만 한 곳은 현관 건너편으로 나가면 마당 겸 옥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정도. 물론 이 마당조차도 오래된 탓게 시멘트 겉면이 갈라진게 선명했으나. 경치는 상당히 좋았다. 옥상인 탓에 전신주에 걸린 고압전선도 가까운 곳에서 목격 가능했고, 뻥 뚫린 시야로 보는 고담의 야경은 정말로 아름다웠으니까. 그것은 써니의 ..
3,010/3,976 딸랑, 문을 여니 문 턱에 자리한 풍령이 외부 공기를 기분 좋게 반겼다. 마침 차를 우리던 옌이 손님인가 싶어 내다보니 그곳엔 얼마전에 사귄 자신의 친구가 떨떠름하게 서있었다. 얼떨떨한 감정이 여실히 들어나는 그의 표정은 이 방문이 그의 의지와는 관계 없어 보였다. "어서와요, 제이슨. 마침 차를 우리고 있었는데 함께 하시겠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옌은 싱냥한 웃음을 띄우며 제이슨에게 말을 건냈고, 제이슨이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그게 내가 '사야할 것'은 아니겠지? 설마요, 저는 제 친구에게 물건을 강매하는 취미는 없는 걸요. "허, 그럼 친구가 아니었다면 강매하려고 했고?" "…반드시 필요하다면요." 예를 들어 생사나 생계에 관련된 부분 같은 경우 말이지요. ..
2,141/2,771 "좋아, 난 분명히 경고 했어." 제이슨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쿠온이 작은 손을 모으며 활짝 웃었다. 당신이 제 제안을 받아들여주어서 무척 기뻐요. 아, 이럴게 아니라 당장 계약서라도 작성할까요. 마침 차를 마시려고 자리를 잡아 놨으니 그리로 가요. 양손으로 제이슨의 한쪽손을 감싸줘이 당겼다. 힘이 약한 건지 억지로 끌고 싶지 않은 건지 당기는 힘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제이슨은 첫만남때 그래했던 것 처럼 그녀의 이끔에 이끌려 가주었다. 파라솔 아래로 도착하자, 노집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용계약서와 펜을 준비해주었다. 이또한 무척이나 익숙한 모양새라, 제이슨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사기당한 기분이랄까. 고용 내용은 전에 말했던 대로지만, 조심해서 나쁠건 없죠. 계약서 내..
7,225/9,313 고담의 전역은 대부분 회색 빛으로 우중충했으나 크라임 앨리의 어두움은 이보다 더했다. 길거리의 부랑자, 눈을 마주치는 것 만으로 시비를 걸것 같은 사람들. 번화했다기보다 스스한 이곳에 브루스가 발길을 돌린 것은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한 가문을 이끌 사람이 되어야 했었으나 브루스는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행복하게 웃던 평범한 아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음습한 냄새와 축축한 공기. 희미한 화약냄새. 나란히 누워있는 부모님이었던 두 구의 시체. 그리고 브루스를 향하는 총구. 브루스는 이제 더이상 그곳에 있지 않았으나 공포는 여전했다. 어린 아이가 무서워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으나, 브루스는 브루스 웨인이었다..
1,721/2,212 "가게-?" 옌의 소개에 청년이 다시금 고개를 돌려, 내부를 살폈다. 이번에는 아까전보다 천천히, 찬찬히 가게의 요모조모를 살폈다. 옌의 친우의 도움을 받아 꾸며진 가게는 옌의 취향을 가득 담되,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테리어로 옌은 가게 내부에 대해서 꽤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가게를 꾸며진 친우의 나이가 있다보니 약간 옛스러운 것은 어쩔 수없지만. "그런 것 치고는 손님이 너무 없는데." "막 개업했으니까요, 첫술에 배부를 순 없죠." 그리고 이렇게 손님이 왔잖아요? 슬쩍 눈웃음지으며 옌이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 '손님'이 저를 칭한다는 것을 눈치챈 청년이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곧 옌의 마이페이스를 익숙하게 넘기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 가게는 무엇을 ..
과제하시는 곡님을 위해서~~~ 1,034/1,361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고, 도시는 활기찼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곁에 옅은 화약냄새가 살짝 풍겼으나. 옌에게는 여전히 활기찬 도시였다. 과거 옌이 들렀을 때보다도 안전하고, 포근해졌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빌런이 활개치며 폭탄이 터지는 위험한 도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어수선한 도시기에 옌이 가게를 차리기에 알맞은 도시기도 했다. 게다가 빌런때문에 부서진 건물은 웨인 기업에서 복구해주기도 한다니 정말 장사하기 알맞은 도시지 않은가? 물론 옌의 가게가 부서질 염려는 없지만서도. 촤락, 하고 부패를 펼친 옌이 눈동자를 굴려 가게를 보았다. 활짝 열린 가게 문에는 문발이 길게 늘어져 가게 안을 가늠할 수 없었으나,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문발 사이로 하얀 연기..
1,061/1,383 해가 지고 곧 밤이 찾아온다. 그래서 배트맨은 헤드셋을 'Set'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set', 나의 "sunset'. 배트맨이 그녀를 부르는 호칭은 그의 소유욕을 만족하게끔 만들었다. 영리한 아이니까 그의 기저에 있는 검은 속내까지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가 헤드셋을 부르면 그녀는 언제나 대답을 돌려주었으니까. 코드명이 헤드셋이다 보니 그녀를 '셋'이라 부르는 이가 많았으나, 배트맨의 그 호칭처럼 코드네임과 그녀의 이름인 민 하예를 관통하는 호칭은 아니었다. 즉, 그녀를 온전히 부르고 있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소리였다. 이 얼마나. 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물론 타칭 '통제광'이라고 불리는 배트맨이 고작 호칭 하나를 완벽히 가졌다고 해..
1,928/2,494 뭐라고 해야할까, 연기 연습을 하고 있으면 연기를 받아 같이 연기해주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렇게, 연기가 막히는 오늘 같은 밤에는 특히나. "진짜로 함께 움직일 생각이야? 너무 수상하기 그지 없잖아!" 오디션에 떨어지는 것도 수 차례, 이번에야 말로 기필코! 하는 일념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작품이었다. 스토리도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는데, 좀처럼 대사가 외워지질 않는 거였다. 아니 외워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상대방 대사까지 모조리 외울 정도였으니까. 다만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연기하기 어려워진 다는 거였다. 하지만 연기 연습이 안된다는 이유로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두 역을 연기해서라도, 연습을 해야했다 집중이 어려울진 몰리도. 그렇게 생각하며 상대의 대사를 내뱉으려고 했을..
2,558/3,293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우습게도 웨인 저택이었다. 업무가 끝난 팀은 오랜만에 정시퇴근을 했고, 웨인저택으로 무사귀가했다. 단정히 매여진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며 방으로 올라가려다 열린 응접실 문 너머로 알프레드에게 차 대접을 받고 있던 그녀와 눈이 맞았다. 옅은빛깔의 아마색 머리카락이 가슴 선에 닿았고 코코아빛 눈동자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팀과 눈이 마주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아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웨인." 그녀가 우아한 몸직으로 천천히 인사하는 사이에도 팀의 머리는 빠르게 굴러갔다. 어지간해서는 사람을 잊지 않는 팀이었기에 얼굴을 보고서도 곧잘 생각나지 않는 그녀에 대한 긴장감이 팀의 두뇌회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그녀에 대한 정보가..
1,639/2,125 다시 이 집을 찾을 줄이야. 다시는 돌아올 일 없다고 생각했던 그 큰저택을 바라보는 제이슨의 감회가 새로웠다. 그 큰 저택의 아가씨가 떠오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타겟이 사교파티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얻었고 제이슨은 당연히 그 사교파티에 참석하고자 했다. 그러나 마땅한 연줄이 없었고 그때 생각난 것이 그 조그마한 아가씨였다. 치료받은 주제에 무단으로 나간 자신을 반길지도 의문인 저택으로 들어와 한참을 걸으니 정원에서 한가로이 차를 마시고 있는 아가씨가 보였다. 저택과 떨어지지 않은 곳 티파티용으로 고급스럽게 꾸며진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햇빛을 막는 파라솔까지. 본격적 티타임을 차리고자 하는 모양새에 잠깐 초탈해졌다. 어쩌면, 그녀의 고용소란 또한 하나의 지나가는 일이었을지도 모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