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는 마가 낀 것에 틀림이 없었다. 교내 최고의 문제아라고 일컬어 지는 제이슨 토드는 사실은 평화주의자다. 비록, 오는 시비 안막고 지나간 시비도 다시보는 제이슨이지만 가급적이면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이 본심이었다. 맹세컨대 '웨인'의 이름을 달고 그의 이름을 더럽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하늘은 제이슨의 편이 아니었는지. 매번매번 시비를 털어오는 것이다. 정말이지 누구는 우등생이고, 누구는 학생회장까지 역임했는데 형이라는 사람은 문제아-라니 아이러니했다. 그럼에도 지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서 시비털어오는 놈과 싸우는 때마다 이겨왔다. 그러나 이 멍청이들이, 한 놈이 안되니 두놈. 두놈이 안되니 세놈. 점점 머릿수를 늘려가더니 종래에는 '무리'라고 칭할 정도가 되었다. 인터넨소설인가 뭔가에서 나오..
스스로의 그림자에 가리워진다는 것은 퍽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이것을 이 감정 무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까. 분노? 열등감? 내가 나에게 분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열등감 또한 그러했다. 과거의 자신에서 나아간 것이 현재의 '나'일 터인데, 열등감 가질리가. 우월감이라면 몰라도. 과거의 '나'의 그림자에 사로잡힌 상대가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부정하고 싶겠지, 아니라고 믿고 싶은걸거야. 가엾게도. "네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한들, 사실이 바뀌진 않아." "닥쳐" 오, 제이슨. 가엾은 작은 울새. 딕은 조용히 혀를 찼다. 남은 온정으로 사실을 알려줘도 그것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다. 그래 너는 옛적부터 그러했지. 딕은 그 어린날의 제이슨을 떠올렸다. 막 로빈이 되던 시절의 너는 또래의 아이들..
아가씨와의 만남은 말 그대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같았다. 달이 뜬 밤, 고담을 청소하는 레드후드는 해가 뜨면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범죄란 때를 가리지 않는 대낮에도 일어나는 법이라 깨어있을 때도 있지만. 그날은 상처도 상처였고 유달리 피곤한 낮이었다. 레드후드라는 아이덴티티를 숨기기 위해 옷만 갈아입은 정도로, 말쑥한 차림새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런 으쓱한 골목에서 다친 사람이 주저 앉아 있디고 한들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불쑥 머리를 든 동그란 그림자에 눈동자만 굴려 쳐다보니 조그만 여자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는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손을 뻗어 부축, 하려 했다. 주저 앉아 있으니 올려다보는 거였지, 일어서면 힌없이 조그만 여자아이가 저를 부축하려고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