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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에게서 과거가 잊혀지고 잘려나간 과거가 모습을 갖추고 슨이 앞에 나타나서 갖은 사랑은 주다 슨이가 그 사랑을 받아들일 무렵에 사라지고, 제이슨이 그 받은 사랑으로 딕에게 잘해주다 결국 눈 맞는게 보고 싶었다...
오늘 문뜩 풀어야지 싶어서 대차게 잡았지만 이후 어떻게 써야할지도 몰라서 일단 드랍.
혹시 더 쓸지도 모르긴 함...
딕의 죄책감과 연정으로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제이슨에게 매우 저자세. 면목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슨이 죽음에 약간 정신 놓은 상태라서 조금 거침 없음-… 일 생각인데, 어쩐지 캐붕같기도 하다.
저 관계에서 갑이 슨이인데, 평소에는 거의 을 입장이었던 슨이라서 갑이 되어 기묘한 느낌을 받는 거기까지 쓰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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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밤이었다. 조금 더 굉장한 만남을 기리고 있었으나 길진 않아도 지겹도록 뵈왔던 사람이고 경험한 사람이라 최악의 결과도 상정하고 있었기에 충격이 덜했다. 오히려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주억였을 정도로. 다만 그렇다고 개같은 기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제이슨은 잠을 자기로 했다. 탄약냄새나 폭발로 뒤집어 쓴 재나 갖은 상처를 치료하는게 우선 순위겠으나, 그런 것보다도 이 어찌할 수 없는 기분을 삭히는 것이 중요했다. 막말로, 이것들을 하루 그냥 두어도 죽거나 하지 않는다. 분노로 맑아진 눈을 질끈 내리감고, 쉼호흡에 집중했다. 천천히 깊고 길게.
콩콩콩,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번쩍 눈이 띄였다. 눈을 감고 있던 것이 어느새 잠이들었던 모양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누웠던 자리를 살펴보면 제이슨으로부터 뭍어나온 피나, 잿가루로 더럽혀져 있었다. …세탁 해야겠네. 개운해진 머리로 몇시간 전의 선택을 가볍게 후회하며 자리를 털었다. 콩콩콩. 다시한번 노크소리가 방안을 울렸고 제이슨이 비척비척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고서야,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이내 개의치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 있던 것은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이야, 제이."
제 얼굴을 보자 물기가 어리는 푸른 눈동자에, 목이 멘듯 억눌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이는 딕 그레이슨이었다. 왜 그레이슨이? 배트맨 패밀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겨우 어제로 하루만에 그들이 이곳을 알아내기는 힘들다 그리고 지금 그의 모습은 어젯밤의 모습과 차이가 있었다. 눈 앞에 서있는 딕 그레이슨은 그 옛날, 제이슨으로 하여금 묘한 감정에 휩쓸리게 하던 그 때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제이슨 토드가 처음으로 죽던 그 때의 모습이었다.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나?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었나? 문을 연 손 끝의 감각이,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에 닿음에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들어가도 될까?"
"…들어와."
이상한 것은 제이슨이 기억하고 있는 그 시절의 딕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그 때의 딕이라면 제이슨이 굳이 들어오라는 허락을 하지 않더라도 비집고 들어올 인물인데 새삼스럽게 허락을 받는 것도 이상했고, 저를 본 것 만으로 울 듯한 얼굴이 된 것도 이상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것 마냥…아, 제이슨은 실제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긴 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이슨의 일로 그렇게 반응할까? 오히려 담백했던 어제의 그가-…. 제이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써 묻으려 한 일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일단 저 것도 손님이라고 음료라도 내주니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왜, 뭐. 제이슨이 퉁명스레 반응하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게 내줄거라곤 생각 못했어서. 물론 딕에게 마실거리를 내주거나 먹을 것을 꺼내주는 것은 마뜩잖은 일이었으나 아주 못할짓 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딕은 마치 그가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굴었다. 저와 싸웠을 지언정 그렇진 않았는데.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봐도 돼?"
"어떻게 살아났는지 알고 싶어?"
딕의 물음에 제이슨이 되물으니 그가 손사레를 쳤다. 아니, 난 그냥 네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네가 어떻게 살아돌아왔는지는 아무래도 좋고, 네가 다시 살아난 것만으로 충분해. …거기로 돌아오라는 소린 안하네? 그걸 내가 무슨 자격으로 말하겠어. 우린 너를 잃어버렸는 데.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녔어. 막 살아났을 땐 꼴이 말이 아니었거든. 그래도 어떻게든 고담으로 돌아왔더니 고담은 그대로고 조커는 여전히 살아있어서-"
"그가 밉니?"
"나는, 나는… 그 사람이 복수를 해주길 바랐어. 조커는 그 사람에게서 나를 앗아간 거잖아?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로빈 자리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주었고… 난 결국 네 대체품 정도였지."
"…제이슨,"
"뭐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고, 새로운 로빈은-… 걘 괜찮은 녀석이더라. 좋은 로빈이 될거고. 나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지."
"내가 해줘?"
무엇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네가 왜? 이건 내 일이고 네가 상관할 바 아냐. …너는 그 사람을 좋아잖아. 그런 일을 했다간 사이가 더 틀어질거야. …하! 그러는 너야말로 말잘듣은 착한 아들이 아니었어? 배트맨과 같은 불살주의자가 내 복수를 하겠다고? 딕의 말에 코웃음을 친 제이슨이 비아냥거렸고, 딕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의 '나'는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됐어. 내 일이고 내 복수야."
"내겐 자격이 없니?"
처음엔 내가 미운지 묻고 싶었어. 그렇지만 갑자기 찾아왔는데도 들여보내주고 마실 것도 내주었잖아. 끔찍하리 만치 미웠다면 그러진 않았을거야. 아까 이야기할 때도 배트맨에 대한 언급 뿐이었고. 너는 그때 없었잖아, 그정도로 융통성 없는 놈은 아냐. 제이슨, 가족을 잃은 건 브루스 뿐만이 아니야. 나도, 나도 내 동생을 잃었어. 네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네가 없어져 버렸다고. 이래도 나와 관련이 없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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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밤이었다. 제이슨으로선 조감 더 멋진 재회를 기대했지만, 길진 않아도 지겹도록 뵈왔으며 경험한 사람이라 최악의 결과도 상정하고 있었기에 생각보다 충격이 덜했다. 오히려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주억였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렇다곤해도 개같은 기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라 제이슨은 그 기분을 떨쳐내고자 잠을 자기로 했다. 화약냄새나 폭발로 인해 살짝 타버린 가죽재킷, 그리고 하릴없이 뒤집어 써버린 재라던지. 정리하지 않으면 안돼는 것을이 산더미였으나 제이슨은 이 모든 것을 미뤄두기로 했다. 그런 것보다 이 불쾌하지 그지 없는 기분을 삭히는 것이 중요했다. 분노로 빛을 내는 눈을 질끈 내리감고, 쉼호흡에 집중했다. 천천히 깊고 길게.
콩콩콩,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번쩍 눈이 띄였다. 눈을 감고 있던 것이 어느새 잠이들었던 모양이다. 누가 왔나? 세이프하우스로서 구비해 둔 곳이긴 하나 아무도 찾아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근방에 이웃이라면 오히려 찾아오는 편이 누군가의 의심을 덜어낼테니까.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팔을 움직이다 느껴지는 통증에 멈칫하던 제이슨은 그제야 제 팔을 살폈다. 생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간밤에 어디에 스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제 몸 상태는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좆같았는지 제 상처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콩콩콩. 다시금 들리는 노크소리가 제이슨의 기상을 재촉했다. 네네, 갑니다. 약간의 노곤함을 담아 대답한 제이슨이 침대에서 일어났고 제가 누웠던 곳을 돌아보니 흙먼지와 재로 더럽혀져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세탁을 해야겠지. 아마 제 꼴도 말이 아니겠지만, 사람이 문앞에 있는 마당에 씻고 문을 열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리를 헤집어 뒤집어 썼을 흙먼지를 대충 털고 문을 열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그의 앞에 있었다.
"…오랜만이야, 제이."
어떻게 여기에. 그는 지난 그 끔찍한 밤, 그 사람과 함께 있던, 한때는 정말로 형제가 될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남자가 서있었다. 제 얼굴을 눈에 담자마자 물기가 어려 금방이라도 눈믈을 쏟을 것 같은 푸른 눈동자와, 울음을 토해내는 것을 억누르는 듯한 메인 목소리로 제게 인사를 건내는…딕 그레이슨. 레드후드로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배트맨 패밀리와 마주한 것은 어젯밤이 최초로 아무리 날고기는 그들이라도 반나절 만에 제이슨의 세이프 하우스를 찾아낼리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가만 보면 그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어쩐지 어젯밤보다 덩치가 줄어든 듯한-…아니 그는 그 날, 우주로 떠나던 그를 마지막으로 보던 그 날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그 때보다는 조금 더 야위어 보이긴하지만 원체 잘난 얼굴이다 보니 티도 안난다. …하, 시발. 좆같게도 제이슨 토드는 그 얼굴에 고담에 돌아온 그 날 묻어두었던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들어가도 될까?"
"…들어와."
상식적으로 사람이 갑자기 젊어지는 일 따위 없으니 꿈인가. 존나 좆같은 꿈이네. 문고리의 촉감, 한발 내믿은 제게 불어오는 바람을 다 무시하며 꿈으로 치부했다. 클레이페이스-일 가능성도 있자먼 놈이 뭣하러 딕 그레이슨의 흉내를 내며 제이슨을 찾아오겠는가. 아니, 아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나 제이슨은 아무래도 눈 앞의 사람이 딕 그레이슨 본인같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멍청하게도 입양 후 형제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멍청한 제이슨 토드를 걸어도 좋다.
다만 이상한 것은 제이슨이 기억하고 있는 그 시절의 딕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그 때의 그를 생각하면 제이슨의 세이프 하우스에 들어가는 것에 허락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노크를 하는 대신 그냥 문을 따고 들어올 놈이었다. 그런데 허락을 구하고 대답을 듣고서야 세이프하우스에 발을 들이는 거 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더 이상하다. 아까 문을 열던 당시에만 해도 제이슨을 눈에 담은 그는 금방이라도 울거 같은 얼굴로 쳐다보았지. 마치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살아돌아온 것 마냥. 확실히 제이슨은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맞으니 틀린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 딕 그레이슨이? 당장 어젯밤의 모습만 보더라도 감격에 우는 모양새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저 배트맨의 골치아픈 문제아를 보는 느낌이었지.
곧 제이슨은 고개를 내저으며 냉장고를 열었다. 제 입으로 들어오라고 한 이상 뭐라도 내줘야 할 것 같았기에 살펴봤지만. 음료라곤, 제이슨이 즐겨마시는 술뿐이었다. 그것도 캔맥주만 줄줄이. 냉장실 문을 닫고 선반을 열면 다행이 커피가 있었다.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마실게 없는데, 커피라도 좋지? 어? 어. 제이슨의 말에 딕이 한박자 늦게 대답했다. 어쩐지 긴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긴장을 한다고 저 놈이? 정말 의외인 것들 투성이었다. 정말로 꿈인가. 신빙성이 더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도 돼?"
"어떻게 살아났는지라도 알고 싶나보지?"
그러나 꿈이라고 하더라도 딕을 향한 제이슨의 반응이 온순해질 일은 없었다.딕의 질문에 비아냥대며 되물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반응 할법한데 그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 나는 단지 네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던 것 뿐이야. 내가 알기론…네가, 죽기전에도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고 그때보다 많이 자랐잖니. 타이름 보다는 해명하는 어조에 가까웠다. 제이슨의 죽음을 담는 순간은 그것만으로 목이 멘듯 잠깐 머뭇거렸으나 그는 결국 입에 담았다. 네가-…어떻게 살아났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네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데. 물기어린 목소리와 처연히 웃는 딕의 모습에 제이슨이 몸을 돌렸다. 손으로는 바지런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으나 그 속은 복잡했다. 그러니까 대체 이게 무슨 일인데.
"그냥,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녔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잖아. 그래도 어떻게든 고담으로 돌아왔는데…고담은 변하지 않았고 조커는 여전히 살아있었지."
그래 고담은 썩은 도시였으니까 제이슨의 죽음하나로 극적인 변화를 겪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배트맨만큼은 그래선 안돼는게 아닌가? 그는, 자신은 배트맨이 선택한 로빈이지 않았는가. 크라임 앨리에서 타이어 도둑질이나 하는 자신을 빼내어 로빈을 만든게 그이지 않았나. 하지만 그래, 그가 불사주의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가 역시 조커를 죽이지 않을 줄은 알았다. 그래서 그딴 쇼를 한거고. 배트맨의 앞에서 그날 일을 다시 조명하면 그 결과가 달라지기라도 기대했었나.
"그가…밉니?"
"나는, 난 그냥 그 사람이 내 복수라도 해주길 바랐어. 빌어처먹을 아캄에 박아두는게 아니라. 그놈들은 변하지 않아. 죽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놈들을 죽이는 것만으로 놈들 손에 죽을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어."
적어도 제 2의 제이슨 토드 같은 꼴은 나지 않을 수 있지. 당신네의 알량한 그 신념이 고담의 시민들을 죽음으로 이끈거라고 알아? 죽음의 공포는 생각보다 강해. 범죄를 저지른 것만으로 죽을 수 있다면 수 많은 빌런들이 몸을 사리겠지. 공포로서 범죄를 제어한다면 그정돈 되야하지 않겠어?
"조커가 죽길 바래?"
"조커뿐이겠어? 고담에 사는 모든 빌런들을 치우고 싶어. 아 블랙마스크는 아직 이용가치가 있으니 살려두는게 좋으려나."
빌런을 이용한다니 이번에야 말로 그에게 한소리를 들을까 싶어 킥킥 웃고 있으면 건너편이 조용하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화가났나 싶어 슬쩍 살피면 고개를 숙인 채 뭔가 생각에 빠진 딕이 보였다. 뭐야, 재미없게. 반응이 없는 딕에 김이 빠진 제이슨이 그의 앞으로 커피를 내렸다. 아, 고마워. 그에 사념에서 깨어난 딕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딱히 감사의 인사를 받을 건 아니기에 그대로 반대편에 앉으면. 커피의 열기로 뜨거워진 컵을 든채로 손가락만 까딱거리던 딕이 물었다.
"내가 할까?"
"뭐를?"
딕의 말에 제이슨이 멍청히 되물었고 돌아오는 대답에 제이슨은 제 귀를 의심해야했다. 조커를 죽이는 거 말이야, 네 복수. 배트맨이 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할까? 니가? 왜? 나도 네 가족이잖아. 정확히는 그렇게 될 뻔했겠지. 로빈에의 복수야 내게 그리 권리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제이슨 토드를 죽인 조커에 대해서라면 나도 자격이 있을거 같은데. 저 미친 놈이 뭐래는 거야. 작아지더니 정신을 놓았나, 아니 내 꿈이니까 미친 건 난가?
"하…! 네가? 배트맨의 착한 아들인 나-이-트-윙-이? 생각해주는 척 하려는 거라면 됐어, 내 복수는 내가 해."
"내가 빈 말을 하는 걸로 보여?"
제이슨이 말을 처내며 코웃음을 치면 딕이 제이슨을 마주보며 물었다. 시발, 저눈은 어딘가 빡 돌아버린 놈의 눈이다. 저런 눈의 빌런은 대게 사고를 치곤 하지. 그러니까 딕 그레이슨은 진심으로 그 따위 소리를 하는 거였다. 진짜 내 머리가 어떻게 됐나? 배트맨에 매번 칭찬하며 저와 비교했던 최고의 로빈이 저런다고? 너는 아직 브루스를 놓지 못하잖아. 조커를 죽여선 사이가 더 틀어질거야. 아아, 너라면 괜찮단건가? 그래? 설마. 나는 내가 예외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괜찮아.
"…왜? 내가 해달라고 했어? 난 네가 대체 왜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는데."
"-‥너를 아끼는 사람이라서, 라는 말로는 부족하니?"
그러니까 왜? 니가 왜 날 아껴? 제이슨은 당최 이 상황이 이해가지 않았다. 제이슨이야 어쨌건 배트맨의 불살주의는 당시 로빈이었던 나이트윙 또한 동의했던 것이 아닌가. 그걸 뒤집는다고? 자신을 위해서? 자신과 그가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모든 게 뛰어났던 첫번째 로빈, 딕을 제이슨이 마음에 품는건 크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질투하고 경쟁자로 의식하곤 했지만 한편으로 그를 동경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딕이 제이슨을? 그가 저를 아끼기에는-… 제이슨이 그에게 저지른 일이 많았다.
"…부족하구나, 그럼 이건 어때?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너는 성질이 급하고 사나운 기질이었지만 굉장한 노력가였잖아. 나는 네 그런 점이 좋았어. 아닌척 의식하고 있는 것도 좋았고, 내가 당장이라도 네 자리를 뺏을까봐 날을 세웠었던 것도 귀여웠어. 그래서, 나도 모르는 새에 너를 많이 아끼게 되었나봐.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나가."
시발, 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더니 좆같은 꿈이었다. 끝내 묻어 잊지 못한 마음이라고 조롱하는건가? 나를 좋아했다는 개소리를 하는 놈의 팔을 잡아 끌었다. 놈은, 나를 제압할 힘을 가지고 있을 것임에도 내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주었다. 그래, 너도 이게 말도안돼는 상황이라는 건 알고 있구나. 딕 그레이슨이 나를 좋아해? 그럴리가 없지. 그러니까 이딴 헛소리를 하는 딕을 쉽게 내어 쫓을 수 있도록한 거겠지. 제이슨은 그대로 딕을 끌어 문밖으로 던지듯 밀어내었다. 저 놈이 진짜 딕 그레이슨이라고 해도 딕의 모습을 한 놈이라 강하게 밀쳐낼 수 없던 거겠지. 멍청한 제이슨 토드.
"제이슨!"
"그 딴 헛소리 할 거 같으면 다신 오지마. 시발, 나도 안돼는 거 알고 있다고! 걔가 날 좋아해? 그런 거 가능할 리가 없단거 나도 잘 알고 있다고. 사고 친게 오죽 많냐. 좋아할래도 좋아할 리가 없지. 근데 그게 마음대로 안돼니까 이러는거 아냐! 시발, 씨이발! 걔 얼굴로 다시한번 그딴 소리해봐. 그땐 너 죽고, 나 죽는거야. 알았어?!"
갑작스레 쫓겨나 제 이름을 부르는 딕에게 제이슨이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놈의 목소리를 들을 것도 없이 문을 거칠게 닫았다. 쾅!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지만 제 알 바 아니었다. 소리보다 제가 더 엿같고 젠장맞았으니까. 딕의 모습을 따라한 놈은 그래도 가지 않고 문들 두드렸다. 제이슨! 갑자기 왜 그러는거야, 내가 널 속상하게 했니? 내가 조심할 테니까 문 좀 열어줘,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보여주면 안돼? 꺼지라고! 애원조의 목소리에 제이슨이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저게 말도 안돼는 헛소리고 내 망상이라는 걸 아는데도 목소리가 같으니 솔깃해지고 만다. 제이슨은 스스로를 다그치듯 소리쳤고 계속해서 두드리던 노크소리가 멎었다. 드디어 갈 마음이 들었나보지. 어서 꺼져버리라고. 제이슨은 차마 문에서도 떨어지지 못한채로 주저 앉아 있으면 잠시간 텀을 둔 후에 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네가 날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속상했다면 미안해. 오늘은 이대로 가고, 다음에 또…올게."
씨이발! 앞에서는 내 허락 받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처럼 굴어놓고 왜 이건 전처럼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그러는건데. 왜 그마저 똑같이 구는데. 제이슨은 제 손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나올만큼 거지같은 기분이었다.
그 후로는 엉망으로 집안을 크게 뒤집었다. 미리 부비해둔 그릇같은건 부숴졌고 의자나 테이블도 제대로 된 꼴은 아니었다. 여기서 자는 것은 무리겠지. 그러나 세이프 하우스라면 몇 채 더있었고, 제이슨은 더이상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챙길 거리만 챙겨 밖으로 나섰다. 이대로 무언가 하기는 그래서 바이크를 타고 적당히 달렸다.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해 고개를 들면 고담의 하늘은 푸른 색으로 물들었다. 빌어먹을.
막 소란을 일으킨 후라 당분간 얌전히 지낼 계획이었기에 제이슨은 바이크를 두고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제 얼굴을 드러내는 대신 준비해두었던 붉은 헬멧을 썼다. 완벽한 레드후드의 복장이었다. 괜히 배트맨 패밀리에 들키지 않도록 길을 돌아가다 제 머리 위로 이동하는 나이트윙을 발견했다. 역시 덩치가 줄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머리 위에 그림자가 지자 마자 몸을 숨겨선가 다행이 나이트윙에게 발각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나이트윙을 마주하고 싶진 않았으니 다행인 셈이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제이슨은 조심 스레 이동했고 레드후드의 구역이자 배트맨 패밀리의 맹점에 도착했을 때 제이슨은 '그'를 마주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제이슨은 놈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제 속을 뒤집고 조롱한 놈을 누가 보고 싶어하겠는가. 하지만 제이슨은 이동 도중 제 머리 위를 나는 나이트윙을 보았고 순찰 구역이 아닌 곳에서 몸을 구부려 지내고 있는 그 시절의 놈을 본 순간 말을 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나이트윙은 지금 고담의 하늘을 날고 있던데,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레드후드였지?"
제이슨을 시야에 담은 놈은 무의식적으로 제이슨의 이름을 담으려다 지금의 모습에 걸맞는 이름으로 바꿔불렀다. 내 말에나 대답해. 네가 왜 여기 있어? 제이슨의 물음에 딕을 닮은 놈은 조금 씁쓸하게 웃더니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이라고? 아 오해마, 나이트윙은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아. …걔가 맞다면 넌 뭔데.
"제이슨 토드를 아끼던, 사랑했던 딕 그레이슨."
네 죽음을 뒤늦게 알게된 이후 너무 힘들었거든,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어. 그게 내 몸을 망치는 일이라도 어쩔 수 없었어. 그래서 잘라내졌어. 누구에게? 그를 아끼던 사람들에게.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 내가 있겠지? 잘라내진 후에도 난 너무 괴로웠어, 슬펐어. 시간이 어떻게 흐른지도 모르겠더라, 그냥 슬퍼하던 도중 네가 살아있단 소식을 알아서 너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오늘 널 만나게 된거고.
"…조커를 죽일까 했던것도 괜찮다 그랬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나."
"그런 계산이 없진 않았지, 그렇지만 널 생각한 것도 진심이었어."
네가 내가 상처입길 바란다면 얼마든지 그럴 생각이었지. 잘라내진 부분이라곤 해도 '나' 역시 '그'이니까. 살아돌아온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겠어. 네가 나보다 더 힘들었을텐데. 아, 그래도 배트맨은 내 존재를 모르니 나이트윙이 내쳐지려나. 시발, 하기만 해봐라.
"내 앞에서 그의 편을 드니?"
"네가 걔라며."
잘라내졌으니까 이제 별개의 개체지. 그럼 얼굴을 바꿔, 목소리도. 아하하 그건 무리일 것 같은데, 타고나길 그래서. …시발. …내가 사라지길 바란다면, 나와 시간을 보내줘. 나는 마음이야 너를 아끼는 마음이자 사랑했던, 그리고 함께 하고 싶던 후회이기도 하지. 후회했던 만큼 너와 시간을 보낸다면 나는 사라질거야. 어짜피 도려내진 부분이 새로 채워질 수도 없으니 그렇게 끝을 맞이하고 사라지겠지.
내가 왜? 그럼 내가 조커를 죽여도 좋아? 감정이란 표현하지 않으면 곪는 경향이 있잖아. 지금까지야 괴로움에 몸부림치느라 몰랐지만 네가 있으니 괴로워하지만을 않겠지. 하지만 후회나 널 사랑하는 마음이 곪아곪아 네 복수를 하겠다고 조커를 향해 덤벼들지도 모르는 일인데. 나는 시크릿 아이덴티티도 없지.
"하, 그래 좋아. 까짓거 하지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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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후드를 뒤집어 쓰고 그 아래로 하얀 볼캡을, 그 아래로 알이 큰 뿔테안경까지. 제이슨은 입힌 복장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사람이, 저렇게 잘 어울릴 일인가. 딕의 외모는 여태까지 어떻게 발견되지 않았나 의문일 정도로 눈에 띄는 외모였다. 상황이 좀 나쁘면 혼자 몸을 숨기면 되는 그때와는 달리 이번엔 제이슨도 함께 움직여야 했기에 저 예쁜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었고, 또 눈에뜨지 않게 숨길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변장이지만 옷과 모자에 가려져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뿐, 잘생긴 얼굴이 덜 잘생겨지진 않았다. 역시 훤히 보이는 안경 대신 선글라스를 씌워야 했을까 후회가 들지만. 뿔테 안경을 받고 제가 좋아하는 히어로의 변장과 같다며 즐거워하던 딕의 모습이 떠올라 차마 가져갈 수 없었다. 부디 당신의 팬 보이가 당신만큼의 위장효과를 보길 바랍나다, 슈퍼맨.
그럼 왜 이제서야 변장을 준비하는가 하면, 이전까지는 그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른 '딕 그레이슨'과 다르긴 하나 그 역시 딕이었고, 제이슨이 그의 신변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이들에게 둘의 관게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 '딕'의 이미지와 제 곁에 있는 딕이 섞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딕 역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지 제이슨이 제 세이프하우스에 가둬두더라도 얌전히 그를 따랐다. 가끔 식사를 차려준다거나 제이슨의 귀가를 맞아주고 안아준다던가하는 어색한 일 투성이었으나 싫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런 것을 바랐던 것일 수도 있지. 딕은 제이슨의 요구는 대게 들어주는 편이었는데, 단 한가지 외출에 대해 조금 의견이 갈렸다. 정확히는 레드후드로서의 외출이었다, 사인이 사인이었던 만큼 신경쓰이긴 하겠지. 그리고 딱히 나가지 말라고 말린 것도 아니었다.
잡지도 못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만 보여서 물어보니, 딕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좀 무섭긴해, 이대로 나가서 다시 되돌아 오지 않으면 어쩌지하고. 그렇지만, 이유는 모르지만 네가 살아서 잘 돌아왔잖아? 그러니까 믿고 기다려야지 어쩌겠어. 정 마음이 쓰인다면 10분마다 한번씩 연락을… 아, 짧아? 그럼 20분…30분… 1시간! 그 이상은 안돼. 신경써주는 김에 내 사정도 좀 봐줘, 응? 다시 생각해도 10분마다 한번은 심했다, 뭘 할수도 없는 시간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게 연락을 해도 돌아오면 분리불안을 겪는 동물을 집에 둔 마냥 엉망인 세이프 하우스를 볼 수 있었다. 제이슨이 돌아오면 매우 겸연쩍어 하며 제가 어지른 걸 치우긴하지만 그, 딕이 이정도 반응이라면 심각한 편이었다. 제이슨은 결국 꼭 필요한 외출 이외에는 밤에 나가는 것을 줄이기로 했고 그동안에 책을 읽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깨달은 것이다 집안에서만 지내는 것은 꽤 답답한 일이었다. 거기다 다른 한쪽은 마음대로 외출한다면, 꽤 힘들텐데도 딕은 그것을 조용히 따랐던것이다. 결국 제이슨 토드에게 남아있던 쥐꼬리만한 양심에 의해 둘의 외출 계획을 잡았다.
자신이 모르는 새에 배트맨 패밀리에게 뒷덜미를 잡혀도 곤란하니 같이 움직이는 편이 좋겠지. 감시하는 꼴이 되어 살피면 그는 오히려 데이트라고 좋아했다. 다만 자신의 얼굴은 둘째치고 딕의 외모는 사람의 눈을 끄는 것이기에 변장하기로 했고 그게 지금의 복장에 이른 것이다. 다만 그렇게 궁리해서 꾸민것치고는 그의 잘생김이 숨겨지지 않아 찜찜했다. 그저 딕에게 반했던 자신의 착각이기를 바라본다.
"맛있다, 그치?"
현재 두 사람은 공원 변두리에 위치한 푸드트럭 앞에 있었는데, 나가는 길에 있던 아이스크림 가게를 보곤 사주겠다고 나서는 딕에 의해 사먹게 되었다. 물론 모습만 똑 닮은 딕에게 지갑따위 있을리 없었고 당연히 제이슨의 지갑이 벌어지게 되었다. 시무룩해하는 딕을 달래기 위해 맛을 고르게 시켰고 딕의 의견이 담뿍 담긴 아이스크림이 제이슨 입에 들어가고 있었다. 매운걸 좋아하나 전부 무난히 먹어내는 제이슨에게는 딕의 선택이 탁월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아이스크림의 단맛이 입에 돌 뿐, 어쩌면 제이슨의 미각 고장은 옆의 사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과 같은 모습으로 그 시절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뤄주고 있는 이 남자 때문에, 그 시절처럼 가슴이 술렁이는 거겠지 바보같게도.
"…별로, 그맛이 그맛같은데."
"그래? 맛이 별로야?"
제이슨의 신통찮은 대답에 자기도 맛을 보겠다며 제이슨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입에 담는다. 야, 너는…! 제이슨이 뭐라고 할 겨를도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맛을 보던 딕이 더더욱 의문이 서린 얼굴로 말했다. 맛있는데? 네 취향일 거 같아 골랐는데 안맞았나? 아니면 혹시 아파? 생각이 점점 나쁜쪽으로 치우치고 있는 모습에 제이슨이 손을 내저었다. 몸이 아픈거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정말로? 거듭 괜찮다고 말하는 제이슨에도 도저히 걱정하는 기색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너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아이였으니까 걱정돼. …그 말을 니가 해? 누구보다 무리를 잘할 놈이 무리하지 않을까봐 걱정이라는 말에 실시간으로 어이가 털렸다. 정말 괜찮으니까 가자고, 너도 오랜만에 나온거잖아.
"내 욕심 같은건 네 건강과 비교할 바가 못되는 걸."
"정말로 괜찮대도. 널 상대로 내가 왜 기를 세워."
이제 '딕'과는 아무사이도 아닌게 분명할테니 그의 앞에서 기를 세워봤자였다. 그래도 끝도 없이 늘어질 것 같다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보니 너 먹고 싶은게 있다고 하지 않았어? 제이슨의 던진 질문에 그가 제이슨의 얼굴을 빤히 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네가 그때 좋아하던 핫도그. 같이 먹고 싶었었어. 아, 거기. 딕의 말에 제이슨이 생각나는 바가 있는지 아는 체 했다. 그를 그곳으로 데려다주는 건 어렵지 않으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거기 맛이 바뀌었는데. 그래서 요즘엔 거기 안가. 뭐어? 그렇담 의미없는데-…네가 좋아하던 핫도그를 먹고 싶었던거란 말야.
그 곳은 번화가에 자리해 있었고 맛이 바뀐 것도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 여지껏 고담에서 지냈던 딕이 한번도 그곳에 들르지 않았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한번도 먹지 못한 것처럼 말한다는 건-…그 시절 갈라진 딕은 그대로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는 의미겠지. 어쩐지 입맛이 써서 입안을 다른 맛으로 채우고 싶어졌다. 거긴 이제 안가지만 다른 곳을 찾았는데 거디라도 갈래? 네가 좋아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딕이 기쁘게 주억었다. 그 시절의 기억과 추억에 의존하긴하지만 새로운 걸 받아들이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거기에 제이슨의 지분이 상당한 모양이지만.
"그럼, 가자."
"응."
이동할 때는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는데, 번화가라 잃어버리기 쉽기도 했고 제이슨이 처음 손을 내밀었을 때에 이런저런 이유가 되었지만. 딕은 이제 딕 그레이슨일 뿐이나 나이트윙시절이 없던 것도 아니라 그 모든 이유가 손을 잡아야할 당위성을 주진 않았다. 그러니까 제이슨이 손을 잡는 이유가 잡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썩 기쁜 일이었기에 딕은 그 이유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마주 잡았다. 그것 외에도 딕이 입고 있는 푸른 후드는 제이슨과 색만 다른 것이고 딕이 쓴 안경은 그가 메트로폴리스의 영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골라준 것이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래 딕이 제이슨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다는 거겠지. 진작에 이렇게 해주었더라면 제이슨과의 관계는 좀더 달랐을지도
"저기야?"
"어. 사람이 좀 많지?"
제이슨의 안내를 따라 온 곳은 공원에서 좀 떨어진 점포로 안에 가계안은 이미 만석이고 가계 앞에는 핫도그를 사기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꽤 유명한 곳이라 좀 기다려야해. 나는 일찍 오거나 늦게 오는 편이라 이렇게 까진 기다리지 않는데 보통은 이런거겠지. 제이슨이 설명에 고개를 딕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먹을 걸 사러와서 동생이랑 같이 기다려보는 것도 하고 싶었던 일이거든. …별걸 다 하고 싶어하네. 하하, 그런가? 하지만 정말로 하고 싶었던 거라. 무언가 특별한게 아니어도 너랑 같이 이런 사소한 것들을 하고 싶었어.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너한테 약점잡혀 하고 싶은대로 다 해주는 멍청이가 여기 있잖아. 딕이 조금 아련한 투로 말을 하면 제이슨이 조금 멋쩍은 듯이 말을 돌려주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너를 억지로 하고 싶게 하진 않고. 처음에 말했듯이 너랑 같이 있는 걸로 충분하니까 말이야. 예정대로 곧-…
"하지마."
"제이?"
"네가 방금 하려는 말, 하지 말라고."
네가 곧 갈거라는 건 알아, 이해도 하고. 말하자면 너는 유령같은 거잖아. 우연찮게 실체를 가졌지만 미련만 채우면 사라지는. 우리가 함께 외출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고. 그렇다곤 해도 네가 사라질거라는 말을 쉽게 꺼내선 안돼. 본체가 있으니까 사라져도 된다? 그럴리가 없잖아, 너는 너는 걔랑은 생각하는 것도 행동도 다른데 어떻게. …나는 네가 슬퍼하는 걸 보조싶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도 정이 많이 들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큰걸 해준 것도 아니고 그때의 브루스만큼 인생을 바꾸어준 것도 아닌데. 아이는, 제이슨은 애정이 그렇게도 고팠었던 걸까. 하지만, 그래 네가 날 생각하며 그런 표정을 짓는게 기쁘다는 건, 확실히 '딕 그레이슨'으로서는 맞지 않지. 내 동생, 제이. 내가 또 내 일에 급급히 너를 배려하지 못했구나. 내가 사라진다는 건, 네게는 사람을 잃는 거와 마찬가진데. 내가 그렇게 경험하고서도 너에게 부담을 주고 말았네. 네가 정 힘이 들고, 견디기 힘들면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나는 네가 지금까지 있어준 걸로 만족해. 아니 네가 살아돌아온것 만으로 충분하니까…. 나가기만 해봐, 반드시 찾아내서 두 다리를 분질러 버릴거니까.
됐으니까 메뉴나 정해. 여긴 거기랑 달리 메뉴가 아주 많아서 상당히 고민해야할 거야. 너는 평소에 뭘 먹는데? 이번엔 너랑 같은 거 먹고 싶은데. …나는 오리지널 칠리 핫도그. 여기선 그것만 먹어. 그럼 나도 그걸로 먹을래. 지갑도 빌려줄테니까 계산도 해보고, 네가 알바를 해서 돈을 벌 수도 없으니 그냥 흉내라도 내봐 사주고 싶어했잖아. 오늘따라 굉장히 친절하네, 이래서야 인기가 많겠는 걸. 형아 안심이야. 헛소리 집어쳐라.
조금 더 기다린 후에 가게 앞에 선 두 사람이 핫도그 두개를 구매했다. 음료까지 시키겠냐는 질문에 고개를 내저었다. 가게는 아직 만선이었으므로 어딘가 있을 벤치에서 먹기로 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벤치가 있어 나란히 앉았다. 조경은 물론 길이 잘되어있어서 앉아 시간을 보내기 적당했다. 나란히 앉은 딕은 곧 포장을 벗겨 한 입 크게 물었다. 맛을 음미하는 눈을 감고 우물우물 씹던 딕이 음, 맛있네. 확실히 네가 좋아할 만한 맛이구나. 그렇게 말하면 제이슨이 조금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여기가 그때의 칠리핫도그랑 가장 비슷한 맛이야. 그 말에 딕이 제 손이 쥐인 핫도그를 다시 보았다.
가게의 맛이 변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고 새로운 가게를 찾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막만하던 제이슨이 저보다 훌쩍 커버릴 정도의 시간이니 솔직히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다만 새로운 가게를 간다고 해서 전에 먹었던 음식과 같은 맛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제이슨은 제 손에 있는 이것이 제이슨이 로빈이었을 즈음에 먹었던 맛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제이슨은 같은 맛을 찾아 헤멘거다. 어쩌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니라 제이슨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처음엔 네가 살아돌아온 것만으로 기뻤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고, 그 모습을 눈에 담으니 자신이 사라져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실제로 딕이 찾아갔을 때에는 잘 지내고 있었으니까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너를 두고 내가 어떻게 떠날 수 있을까. 자신을 만든건 그 시절 '딕 그레이슨'의 감정이고 감정은 언젠가 소모된다. 가능하다면 네가 과거를 떨칠때까지 있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겠지. 내가, 네게 어떡하면 좋을까.
딕 그레이슨은 기묘한 감각에 휘둘리고 있었다. 무언가 잃어버린 듯 제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거울에 서서 자신을 살피고, 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어디 하나 다른 점이 없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딕 본인도 기억하지 못하고, 가까운 가족들도 알지 못하니 필시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신경쓰지 않아도 될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 부족함이 자꾸 제 신경을 건들여대니 아주 잊어버릴 수도 없었다. 왜 이런 느낌을 갖게 된 건지, 어떻게 해야 이 느낌이 해소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느낌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레드후드를 제 눈으로 담은 날, 정확히는 레드후드가 잃었던 동생인 제이슨 토드임을 알게 된 이후 부터였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 그와 저는 피를 나눈 친 형제도 아니었거니와 그렇게 오랬동안 알고 지낸 것도 아니었다. 딕이 로빈에서 나와 나이트윙이 되었을 때 빈자리를 채우듯 들어온 손아랫동생은 성격도 아주 나쁜 편이라 그리 살갑지도 않았다. 다만 범죄를 싫어하고 엄청난 노력가에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꽤 강했던 것로 기억했다. 그 때의 딕은 제 일에 바빠 제이슨에게 그렇게 신경써주지 못했다. 제이슨이 죽었다는 것도 몰랐었고 나중에서야 알게되어 울었던가. 딕은 제이슨에 대한 기억이 얼마 없었고 이제와 제이슨을 보았다고 힌들 감상에 젖을 리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다툼이 있었던 배트맨이면 모를까.
"딕, 잠깐 괜찮을까?"
"응? 무슨 일인데. …아 혹시, 너도 내 도플갱어를 봤다고 하진 않을거지?"
딕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이것 또한 최근에 벌어지는 일로 고담 내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계속 듣게 되었다. 그저 닮은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으나 딕으로 착각할 정도라면 감쪽같다는 것으로 도플갱어라고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물론 고담에는 클레이페이스라는 예외가 있긴 했으나 그는 아직 구금 중으로 딕을 흉내낼 이유도 없었다. 딱히 무언가를 저지르는 건 아닌 듯 했지만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한듯 갑자기 등장한 그의 존재는 눈여겨 두어야했다.
그 이야길 팀에게도 흘린적이 있었는데 그가 흘려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네 이야기를 듣고 혼자 알아봤었거든, 나타났을 때 꼭 다른 누군가랑 함께 있었다고 했다며 같이 다니는 그 사람의 신원이라도 알면 도움이 될거 같아서 목격정보가 있던 곳의 카메라 영상을 살펴봤는데, 네가 확인해줬으면 해서. 팀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은 것을 보아 그냥 넘길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복잡은 제 심경은 접어두고 고개를 끄덕이니 챙겨온 노트북을 밀어 영상을 비추었다.
"푸른 후드의 사람이 아마 사람들이 봤다고 하는 그 사람이 아닐가 해. 모자와 안경때문에 얼굴을 정확히 알아볼 수 없지만,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은 나와서. 딕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하고."
"…제이슨."
녹빛이 섞인 푸른 눈에 반항기 어린 눈빛, 드물게 일부만 하얗게 물든 것 하며 모두 딕이 알고 있는 인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팀 또한 그라고 생각해 딕에게 가지고 온 것일테고, 방금 딕의 발언으로 확신했을 것이다. 제이슨, 레드 후드는 배트맨의 행보에 불만을 가지고 범죄자를 죽이는 일도 빈번하니 이래저래 마찰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레드후드도 나이트윙에게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를 닮은 이랑 같이 있다고? 무언가 꾸미는 게 아닐까 의심부터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의상이 눈에 띄는 편이라 이동방향을 참고해 찾아보려 했는데, 카메라 위치를 알고 피해버리더라. 후드쪽 말고 볼캡 쪽도 감이 좋은 것 같았어. 그리고…"
영상을 쳐다보는 딕에게 설명을 하던 팀이 말끝을 흐렸다. 팀이 의미없이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해 영상에서 겨우 시선을 떼고 팀을 바라보면, 그는 아주 곤란한듯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 푸른 후드의 남자. 단순히 닮은게 아니라 본인이라고 생각해. …나라고? 응, 버릇이라던가 움직임에서 딕과 똑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어. 뭔가의 이유로 딕과 분리된 게 아닐까? 뭔가 잃어버린것 같이 어색하다고 말했었잖아.
"확실히 내가 그걸 느낀 날은 레드후드를 만난 다음날이야, 그때 그가 뭘했다고 생각해?"
"글쎄, 그건 모르지. 하지만 그가 아주 관련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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