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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08 팀슨 향수

쿠오니 2022. 4. 8. 00:44

 그건 언제부터인지 팀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다. 손바닥 만한 투명하고 작은 병에, 고급스러운 라벨 뒤로 찰랑이는 반투명한 액체. 그 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쓰지 않는건가 싶으면 그건 팀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놓여있었고, 언제든 그의 눈에 띄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쓰지 않는 것이라면 이렇게 챙겨다니지는 않으리라. …뭐, 쓰던 쓰지 않던 그의 자유이나 제이슨이 이를 신경쓰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향, 제이슨의 그것의 향기가 궁금했다. 자신의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제이슨이 그것을 알게 된 것은 며칠 전의 일이었다. 우연한 밤, 제이슨이 팀을 만났을 때였다. 만났다기 보다 그가 일방적으로 발견한 것에 가까웠고, 팀의 모습은 언제나의 모습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무언가에 골몰한 듯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팀은 묘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어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다. 달리 할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말을 걸 필요는 없었기에 그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냄새가 아니었으면. 그것은 담배 향으로 제이슨이 애용하는 그것의 냄새와 매우 흡사했다. 평소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은 일이라 무심코 돌아볼 정도로.


 그러나 제이슨은 곧 바로 그에게 말을 걸지는 못했다. 자신이 묻는다면 그것을 책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을까하고. 아니, 사실 그에게서 그렇노라고 들는 것이 무서웠다. 팀에게 직접 묻는 대신 제이슨이 선택한 방법은 그와 가깝고 제이슨의 질문에도 쉬이 대답해 줄 그의 형이자, 그의 선임이었던 딕이었다. 기회를 잡는 것은 어려웠다 슨이가 먼저 만나러 가는 일은 드물었고 아무렇치 않은 척 자연스럽게 던지는 것이 어려웠다.


"걔 혹시 담배 펴?"


"걔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야?"


"팀 말이야, 걔 한테서 담배 비슷한 냄새를 맡은 것 같아서."


"안 필걸? 팀은 커피는 몰라도 다른 건 잘 안하잖아."


 최대한 신경쓰지 않는 척, 마침 생각난 척 말을 던지면 딕이 쉽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최근에도 자주 교류하는 딕의 말에 따르면 팀은 담배를 피지 않는다고. 하기사 술을 마실 수 있음에도 즐겨하지 않는 팀이 담배를 할 리가. 애초에 담배 연기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놀리듯이 그의 앞에 연기를 뱉어냈을 때 찡그린 얼굴을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담배랑 비슷한 냄새라, 어쩌면 향수 일지도 모르겠다.


"…향수라고?"


"얼마 전에 팀이 향수를 사왔었거든, 향을 만들어서 말이야."


 쓰는 모습은 못봤지만, 향이 궁금하다고 해도 시향한번 시켜주지 않더라. 그래서 무슨 향인지는 잘 모르지만…팀에게서 난 것이라면 그것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 무슨 담배냄새를 향수씩이나 만들어서 써.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다. 글쎄, 그거야 나도 모르지. 딕의 의견에 핀잔을 주었으나, 제이슨으로서도 그 추측이 타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담배 향수따위를 만드는 팀의 의중을 모르겠다. 그저 향을 맡고 싶은거라면 그냥 담배를 사서 불만 붙여놓으면 된다. 간접흡연을 문제 삼는다면…글쎄, 그는 커피를 물 쓰듯 마시는 카페인 중독자가 아닌가.


"정 신경쓰인다면 물어보는게 어때?"


"네게도 안가르쳐 줬다며."


"네겐 가르쳐 줄지도 모르잖아?"


 자신들 중 가장 사이가 좋은 딕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데 자신에게 가르쳐 줄리가 없지 않은가. 딕도 자세히 아는 바가 없으니 그 다음 기댈 곳이라고는 알프레드인데… 이 유능한 집사는 팀이 곤란하거나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알고 있아도 입을 다물 것이다. 역시 담배 냄새의 정체를 알려면, 향수에 대해 알아보려면 직접 물어보는 수 밖에 없을까. 그러나 어째 직접적으로 묻기가 점점 꺼려졌디. 알고 싶은 마음 한편에 더이상 발을 딛여선 안된다는 경각심도 있었다.


 그러니 이것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팀의 향수가 놓여있고 그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뚜껑을 얼어 그 향을 맡고 닫아둔다면 팀 몰래 그것을 알아낼 수 도 있었다. 알고싶다, 알고 싶지 않다. 상반된 마음이 제이슨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결국 제이슨은 손을 뻗어 작은 병을 집었다. 우선 열지 않고 냄새를 맡아 보았으나 단단히 잠겨있는지 조금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역시 뚜껑을 여는 수 밖에 없나하고 뚜겅을 잡았을 때,


"…제이슨?"


 공교롭게도 병의 주인이 돌아왔다. 의아해하던 팀은 제 손이 잡힌 병을 보는 순간 표정을 굳혔다. 성큼성큼 다가간 그가 거칠게 그것을 빼았았다. 뭐하는 짓이야? …네가 답지않게 향수같은 걸 들고 있으니까 궁금해서 살폈을 뿐이야. 내가 향수를 가지고 있는게 그렇게나 이상한 일이야? 이상한 일은 아니지, 다만 산지 꽤 된거 같은데 사용감이 없어서 말이야. 쓰지도 않는 걸 뭐하러 샀나 싶어서. …쓰려고 산 건 맞아, 쓰지도 않는걸 사서 뭐하겠어. 그저 쓸 일이 적었던거지. …가끔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쓰는 거야.


 "담배 향을?"


"…그래, 가끔 색다른 자극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넘겨짚어 던진 말에 팀이 잠시 침묵한 후 대답했다. 딕의 말대로 저것은 담배향이 나는 향수였고, 팀이 그것을 시인했다. 어째서 담배향을 기분전환 용으로 쓰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팀이 그것을 알려줄 것 같진 않았다. 볼일이 끝났으면 나가보도록 해, 좀 쉬고 싶으니까. 바싹 경계한 채로 축객령을 내리는 팀에 제이슨의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애초에,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 이정도 축객령에 마음이 상하는지. 한마디라도 하면 그에게 화풀이라도 할 것 같아 말 없이 그의 방을 나섰다. 돌아갈까. 이대로 이곳에 머물러도 나아질것 같지 않았다, 유능한 집사는 그가 이곳에서 식사라도 함께하길 바라겠지만 이 상태로 식사가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성큼성큼, 상한 기분을 숨기지 않는 걸음걸이는 누군가가 보면 혀를 찰 수준이었으나 다행이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현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제이슨 도련님? 돌아가시는 겁니까? 식사라도 함께하지 않으시고. 저택에서 나서려 막 문고리를 쥐었을 때 거실로 나온 알프레드가 제이슨에게 말을 걸었다. 울컥 솟은 마음을 잠재우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며 대답했다. 네, 집에서 해야할 일이 남아있어서.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떨리는 목소리를 그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으나 알프레드는 모른척 제이슨의 변명을 넘겨주었다.


 "―아,  그런데."


 막 한발짝 내딛으려는 그때 알프레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젯밤 저택에 들르셨습니까? 아니, 그런 적 없는데. …그렇담 밖에서 티모시 도련님을 뵈신 거로군요. …그걸 어떻게 알아? 티모시 도련님의 방에서 도련님의 냄새가 났었으니까요. 아아, 담배냄새? 제이슨이 으레 아는 척하자 알프레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제이슨 도련님의 냄새입니다. 도련님만 피우시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 담배는. 애용하시는 담배냄새가 나는것은 사실입니다만, 도련님의 체향에 섞여 담배향과는 조금 다른 냄새가 난답니다. 


"…제이슨 도련님?"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가볼게."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노련한 집사의 깍듯한 인사를 뒤로하고 제이슨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걸음걸이에는 작은 조급함도 보였다. 이 사실이 드러나도 상관없다, 제이슨인 조금이라도 빨리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제이슨은 어젯밤 팀을 만나지 않았으니까! 어젯밤 뿐이랴 팀 때문에 신숭생숭했던 제이슨은 오히려 팀을 피해다녔으므로 제 냄세가 팀에게 옮을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건 팀이 다른 어디선가 묻혀온 것이겠지만 제이슨의 체향까지 다른 곳에서 묻혀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즉, 팀의 방에서 나는 제이슨의 냄새란 팀의 향수라는 말이었다. 담배향과 비슷하지만 다른 냄새, 제이슨의 향이 섞였으니 미묘하게 다를 수 밖에. 거기다 제이슨 스스로가 자신의 냄새를 맡을 리 없으니 같은 냄새라고 해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로 감쪽같이 속았다. 제이슨의 냄새를 흉내낸 향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조금도 표현하지 않는 팀이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남의 냄새를 자기고 있는 것을 탓해야할지. 정말로 웃긴것은 진상을 알게되자마자 홧홧하게 열이 오르는 얼굴이었다. 부끄러웠으나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싫은기분이 아닌게 문제였다! 젠장할! 저택에서 상당히 떨어지고 나서야 걸음을 멈춘 제이슨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저앉았다. 아, 정말로, 이제 어떻게 그녀석의 얼굴을 보면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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