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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팀슨]배트맨 팀, 로빈 제이슨

쿠오니 2017. 12. 20. 23:30

  "제이슨?"

 

 폭발과 함께 팀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반죽음 상태의 어느 로빈이었다.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이슨 토드, 실종된 로빈이자 전임 로빈이었다. 팀의 로빈 코스튬은 제이슨이 생각나게 한다는 이후로 팀 때부터 약간 복식을 바꾸었으므로 저 복식을 입은 사람은 딕과 제이슨 밖에 없었다 그리고-, 딕의 로빈시절까지 빠삭하게 기억하고 있는 팀이 보기에 이 아이는, 딕이 아니었다. 남은 건 단 한명 제이슨 토드 밖에 없었다.

 

 미약하게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으로 보아,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부상 상태로 보아 이대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이었기 때문에 팀은 제이슨을 조심스렙게 들어 올렸다. 병원으로 데려가기에 제이슨은 로빈 코스튬을 입고 있었고 신원미상자였다. 그렇기에 팀은 제이슨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보다도 배트케이브에 데려가는 것을 선택했다. 배트케이브에도 병원 못지 않은 의료시설이 가득했으니 아마 괜찮을 것이었다. 괜찮아야만 했다. 팀 드레이크는 더이상,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케이브로 돌아온 팀은 무사히 제이슨을 치료할 수 있었다. 붕대를 둘둘 감은 채로, 금방 털고 일어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제이슨은 브루스에게 훈련받은 사람이니 괜찮을 것이었다. 그렇게 한숨을 덜으니 또 한가지가 문제였다. 깨어난 제이슨을 어떻게 대해야하는가였다. 팀과 제이슨은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고 팀이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니 순순히 제이슨이 들어줄리가 없었다. 물론 그가 반항한다면 제압하면 되는 문제이긴 하나, 제이슨이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제이슨이 사라진 당시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을, 팀이 배트맨이 된 현재를 로빈인 제이슨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차라리 카울을 쓴 채로 만난다면 제이슨의 충격이 덜하지 않을까. 혹 딕에게 연락을 한다면. 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은 계속 됬다. 쉬이 결정내리지 못하는것은 팀이 제이슨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가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그의 그림자 아래서 지내야했으나 누구도 팀에게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가끔 제이슨이 남긴 흔적으로 제이슨이 어떤 사람인지 추측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역시 정보가 부족하긴 했지만.

 

 처치가 무사히 끝났다고 해도 제이슨은 중상환자였기 때문에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했다. 그러나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웨인저에 데려올 갈 수는 없었기에 팀이 틈틈히 보러 가는 것으로 대체했다. 가습기에 공기 청정기. 붕대를 가는 등의 행위를 할때면 꼭 청결한 상태로. 제이슨의 상처가 많이 호전되었을 즈음에는 케이브 안에서는 언제나 카울을 쓴 채로였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니 언제든 대비할 수 밖에. 아이가 깨어나면 무슨 말을 할지 몇번이고 곱씹으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제이슨도 깨어났다.

 

"배트맨?"

 

 -이 아니네. 제이슨은 제 눈 앞의 팀을 보며, 배트맨을 담았지만 이내 부정했다. 제이슨에게 배트맨은 브루스 한명 뿐이었겠지만, 이렇게 단박에 부정당하니 묘한 느낌이었다. 배트맨 맞아. 네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는 다를지라도. 팀의 대답에 제이슨이 느리게 깜박였다. 배트맨이라고? 아닌데, 배트맨은 이렇지 않은데. 그럴 수밖에, 카울을 쓴 사람이 다르니까. 팀이 제이슨의 부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카울을 벗었다. 제이슨은 다시 눈을 깜박이며 팀의 얼굴을 인지하려 했고, 카울을 벗은 얼굴을 완전히 인지한 순간 팀을 향해 날을 세웠다. 넌 누구야? 경계어린 말투에 팀이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팀 드레이크, 브루스 웨인의 뒤를 이어 2대 배트맨이 되었지."

 

 브루스를 알아? 아직 어려서인지,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경황이 없는 것인지. 제가 아는 이름을 들으니 단번에 경계를 누그러뜨리며 물어왔다. 팀은 제이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알지. 그리고 너에 대해서도. 나도? 이제 제이슨의 눈에는 호기심이 서렸다. 제이슨의 고개는 완전히 팀을 향하여 있었고, 눈동자는 팀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 딕 그레이슨의 뒤를 이어었던 2대 로빈 제이슨 토드. 팀의 대답에 제이슨이 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내려다 본 제이슨의 양 뺨은 살짝 붉어져 있었고 호기심으로 차있던 눈동자에는 이채가 서렸다. 이 어린 아이는 저를 알아본 것이 못내 기뻤던 모양이었다. 그랬기에 팀은 그 다음 말을 잇기를 잠시 망설였다.

 

"나는 네 다음 대 로빈이었어, 제이슨."

 

 내 다음-…이라고? 팀은 흔들리는 제이슨의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폭발사고 이후 네가 실종됬었거든. 폭발현장에 네가 있었다는 흔적은 있었는데, 너는 보이지 않는거야.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백방으로 찾아도 널 찾을 수 없었지. 그리고 지금 네가 나타난거고. 그래서 브루스가 당신을 로빈으로 삼았어? 그는 그러지 않았고, 그러지 않으려고 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제이슨의 물음에 팀이 말했다. 제이슨, 나는 내 스스로 로빈이 되고자 찾아간거야. 배트맨에게는 로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걸 내가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 배트맨이 브루스라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제이슨의 질문에 팀이 드물게 자신있는 웃음으로 말했다. 난 제법 명석하거든. 배트맨에 대해 조사하다보니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이라는 결론이 났어. 그래서? 찾아가서 물었지 당신이 배트맨이 아니냐고. 오 이런, 내가 그 장면을 봤어야 했는데. 제이슨은 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침통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보기좋게 거절당했어. 그 사람은 더이상 로빈을 들이려 하지 않았어. 그래도 결국, 받아 들였잖아. 제이슨이 작은 목소리로 불퉁히 중얼거렸다. 그래 결국은 받아주었지. 하지만 그는 널 사랑했어. 이 내가 다름아닌 증인이니까. 팀의 말에 제이슨이 팀을 쳐다보았다. 웨인저 곧곧에 너에 대한 것이 잔뜩 남아 있었어. 네가 아꼈던 것들, 네가 좋아했던 것들. 다들 네가 죽었을거라고 믿지 않았어. 언제건 네가 돌아올거라며 네 물건들을 소중히 다뤘지. 하지만! 제이슨은 무언가 말하려더 입을 다물었으나 팀은 제이슨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로빈을 들였잖아. 팀은 제이슨의 머릴 살살 쓸면서 말했다. 그거 아니? 내 때부터 로빈 코스튬이 바뀌었어. 네 생각이 난다고. 난 그 코스튬을 입지도 못했어. 제이슨은 입을 다물었다. 무어라고 말하기어려운 눈치였다. 팀은 대답을 재촉하는 대신 다른 제안을 했다. 네 상처가 나으면 웨인저에 올라가서 네 방에 한번 가봐. 그럼, 알 수 있을 테니까.

 

"웨인저택이라고?"

 

"그럼, 배트 케이브가 달리 어디에 있겠어."

 

 팀의 대답에 제이슨은 안심하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게 눈을 뜨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으니 놀랍법도 했다. 그런 중에 배트케이브만은 자기 기억 그대로니 안심되기도 하겠지. 팀은 제이슨을 살피며 제이슨과의 대답을 곱씹었다. 지금 웨인저택, 적어도 팀이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제이슨에게 맞는 옷은 찾을 수 없었기에 제이슨은 지금 나타날때 입었던 로빈 코스튬 그대로였다. 로빈이라-. 로빈이 몇개를 거쳐간 만큼 브루스가 배트면이었던 시절에는 사이드킥인 로빈이 언제나 자리를 지켰다. 로빈들은 성장해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발뻗고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배트맨 팀은 어떠한 사이드킥도 두지 않았다. 물론 팀이 도움을 요청하면 얼마든 도와줄 가족들이 있었으나. 팀은 혼자 활동하는 것이 편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제이슨에게 이 말을 던진것은 다분히 즉흥적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제이슨. 내 로빈이 되지 않을래?"

 

뭐? 제이슨은 제가 잘못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제이슨 너는 로빈이고, 나는 로빈이 없는 배트맨이잖아. 어때? 막 생각한 핑계거리를 그럴싸하게 둘러대며 팀이 재차 물었고, 제이슨은 고민하는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리고 겨우 꺼낸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내가 필요해? 그리고 팀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잘 모르겠어. 로빈을 두었던 적이 없으니 당연한 소리지만. 팀이 대답한 뒤에도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야 제이슨의 대답이 들려왔다.

 

 "좋아."

 

 

 


 제이슨이 로빈로서의 복귀와 재 데뷔는 제이슨이 상처를 다 낫고 나서도 재활을 마친 후였다. 제이슨은 두번째였고 팀은 로빈이었던 전적이 있었으니 훨씬 나을거라 생각했었지만, 과연 배트맨과 로빈. 당연하리만치 다툼이 잦았다. 혼자서 활동했던 배트맨과, 이전 파트너와도 많이 다투었던 제이슨이었다. 서로 다른 타입이었고 접근 방식도 달랐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합이 맞아 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었지만. 제 지시대로 따르지 않는 제이슨이 못마땅했다.

 

"로빈!"

 

팀-배트맨이 로빈을 책망하듯 불렀고, 로빈의 반항적인 눈초리가 돌아왔다. 왜요? 모로 가나 서울로 가면 되잖아요. 로빈은 불만스럽게 쏘아붙였다. 로빈. 결과만이 라니라 과정도 중요하다고요? 글쎄요. 우리가 하는 방법이 마냥 선한 방법만은 아니지 않나요? 네 말이 맞아, 우리가 하는 방법이 마냥 옳은 일만은 아니지. 하지만 너는 너무 과했어. 배트맨의 말에 로빈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래. 언제나 내 잘못이죠. 그리고 그 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요.

 

"배트맨은 대가 바뀌어도 배트맨이네요."

 

"나는-, 브루스가 아니야."

 

 제이슨의 말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걸린 것인지, 카울을 벗은 팀이 말했다. 팀의 험악한 인상에 잠깐 멈칫하던 로빈-, 제아슨은 곧 이내 평정을 유지하는 척 하며 말을 이었다. 오, 그렇지 넌 팀이지. 그런데 하는 행동이 브루스를 닮았단 말이야. 하는 행동이나 생각까지 꼭- 그만. 팀이 제이슨의 말을 잘라내었다. 방해받은 제이슨 불만스럽게 팀을 쳐다보았고, 팀도 마찬가지로 사냡게 노려보며 무어라 입을 열려다 그만 두었다.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올게.

 

 제이슨이 있는 의무실에서 나와 성큼성큼 걸어가던 팀은 어느정도 제이슨과 멀어지자 걸음을 멈추었다. 제이슨이 브루스를 입에 담았을 때 팀은 울컥 솟는 분노를 누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이성을 발휘해서 소리치는 것만은 막았으나 말을 내뱉었다는 지점에서 유치한 행동이었다. 제이슨에게는 팀이 두번째였으므로 브루스와 비교할 수 밖에 없었으며 제이슨은 팀과 브루스를 두고 누가 낫다 덜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다만, 팀은 제이슨이 브루스 시절의 배트맨이야기를 듣고싶지 않았다. 제이슨이 그의 이야기를 하는게 싫었다. 팀과 제이슨이 가진 공통점이라고는 브루스와 딕 밖에 없었는데.

 

 하아. 팀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얼굴을 쓸었다. 팀은 이성적인 편이었으나 자신의 감도 적지 않게 믿었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로빈을 고용했던 팀은 아직까지도 제가 옳은 일을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제이슨과 다투거나 제이슨이 현재 생활을 적응하지 못할때마다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제이슨을 이대로 잡아두어도 되는 걸까. 로빈을 고용했던 것도 제이슨을 이곳에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고, 찾아본다면 제이슨을 제가 원래 있어야하는 때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팀의 기억에 제이슨이 돌아왔다는 정보는 없었으나 그 역시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팀이 스스로의 결정에 의심이 생길 무렵, 팀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발신인은 딕 그레이슨. 팀의 가족이었으며 누구보다 먼저 독립했던 배트맨의 사이드킥이었다.

 

 "여보세요, 딕?"

 

[팀! 잘 지냈어?]

 

 딕의 전화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에 전화를 받으니 딕의 밝은 목소리가 수화기너머로 들려왔다. 그런 딕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저조했던 기분도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나야 잘 지내지. 딕은 어때? 블뤼드헤븐은 여전해? 여전해. 덕분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고. 그래서 그 바쁘신분이 어쩐 일이야? 실은 묘한 소문을 들어서. 소문? 그래, 배트맨에게 로빈이 생겼다-라는 소문 말이야. 나는 배트맨에게 사이드킥이 생겼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말이야. 음. 팀? 설마 사실인거야?

 

"그 것에 관해서 할 말이 있는데-,"

 

 팀은 제이슨을 로빈으로 들였으나 완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해. 다른 이들에게도, 공적으로도 제이슨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고, 배트맨이 로빈을 데리고 다니는 것에 여파를 예상하지 못했다. 로빈을 데리고 다니면 분명 다른 도시로도 이야기가 날 것이 분명한데. 매우 그 답지 못한 행동이었으나. 팀은 딕의 전화에 실낱같은 희망을 얻었다. 팀과 제이슨의 또다른 공통점인 딕이라면 저를, 제이슨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제이슨이 나타났어"

 

[뭐?]

 

 팀의 말에 딕이 되물었다. 몇 달 전에 제이슨이 그 때와 같은 모습으로 고담에 나타났었어. 찢겨지고 탄 흔적이 그대로 남은 로빈 코스튬을 입고. -로빈 코스튬을 입은 제이슨이, 몇달 전에 나타났다고? 딕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가 화나 있다는 것정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팀, 너도 알고 있었잖아. 우리가 얼마동안 그를 찾아해맸는지. 그 아이의 빈 무덤을 만들면서 조차도 우리가 그 아이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는 것도. 그런데, 그런데―――― 일단, 내가 그리로 갈게. 응, 고마워. 고마워할 필요없어, 가서 전뜩 혼낼테니까. 혼자서 그 큰 일을 앓고 있었다니! 준비해야하니까, 일단 끊을게. 전화가 끊긴 수화기를 내려다보며 팀은 다시 울적해졌다.

 

 

 


"새삼스럽게 DNA검사는 왜?"

 

 제이슨의 피를 뽑아낸 팀이 그것을 검사대에 올려놓는 것을 보며 제이슨이 물었다. 하려면 처음 발견한 날 하던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안해? 나야 널 처음브터 제이슨이라고 여겼으니까 따로 검사할 필요성을 못느꼈었어. 하지만 이런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오늘 찾아올 손님도 그런 편이고. 그래? 뭐 하긴 나도 그런 사람을 몇몇 알고 있으니까. 담담히 대답하는 제이슨을 보며 팀은 옅게 미소지었다. 몇몇 뿐이겠어. 그 사람 밑에서 성장한 로빈들은 다들 그렇잖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번 일이 조금 예외일 뿐이야.

 

 팀의 입에서 브루스를 언급하자 제이슨은 슬쩍 그의 안색을 살폈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팀이 그렇게 감정적인 면모를 보이고 나서 제이슨은 브루스와 팀을 나란히 표현하지 않았다. 누구와 비교당하는 것이 썩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어선지. 제이슨은 더이상 브루스와 닮았단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면에서 제이슨은 팀보다도 나아보였다. 과거, 팀은 줄곧 제이슨과 딕을 비교하곤 했었으니. 아, 일치하네.

 

 "당연한 소릴. 내가 제이슨 토드인데."

 

 팀의 중얼거림에.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보다 DNA정보까지 있는거야? 정확히 말하면 그대로 둔거지. 브루스가 쌓아 올린 것 위에 내가 한 것들을 쌓아올렸으니까. 팀의 말에, 제이슨은 화면에서 눈을 떼며 물었다. 그래서 이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한 사람이 누군데? 내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긴한데 그 사람은 아닌거 같고.

 

"그 사람이 아마 난거 같은데?"

 

 배트케이브에 팀과 제이슨 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당연한 수순으로 두 사람의 얼굴이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급하게 온 듯 살짝 뻗힌 머리와 헝크러진 옷차림으로 찾아온 청년은 팀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딕! 반가움에 팀이 그를 불렀고 제이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청년을 살펴보았다. 저 사람이 딕이라고? 제이슨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보다도 훌쩍 지난 걸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는 것과 인지하고 있는 것은 차이가 컸다. 훌쩍 나이가 든 딕늘 마주하며 제이슨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오 세상에."

 

 팀이 자세히 설명할 겨를도 없이 제이슨을 마주한 딕은 눈물을 글썽였다. 제이슨!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리고 찾았는지 알아? 무사해서 다행이야.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저보다 훌쩍 큰 딕이 저를 안고 울먹이는 것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기뻐하며 슬퍼하는 딕의 등을 대충 다독여주며 생각했다. 과연 브루스도 제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걸 알면 딕처럼 울며 기뻐할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제이슨은 그런 생각을 하다 팀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속내가 들킨 줄 알고 뜨끔하였으나 다행이 팀은 제이슨의 생각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팀의 앞에서 브루스를 생각하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이었다. 이제 팀은 제이슨의 배트맨이었고 파트너였으니까. 제이슨은 조용히 눈을 내리 깔았다. 아직도 약간 떨고 있는 딕의 등을 정성스럽게 쓸어내렸다. 난 괜찮아. 존나 아팠던거 같은데, 죽을 것고 같았는데 어쨌든 네 동생이 잘 치료해줘서 괜찮아. 배트맨과 싸워 속상해하던 걸 딕이 달래주는 것이 엇그제 같은데 훌쩍 커진 등을 제가 쓸고 있는게 어쩐지 어색했다.

 

 "브루스에게는 연락했어?"

 

 아니. 내가 직접 확인한 뒤에 하려고 하지 않았어. 너도 제이슨에 대해서 알고는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알고 지낸건 나와 브루스 정도잖아. 브루스는 이제 나이도 있고하니 확실히 확인한 뒤에 전해주는 게 나을거라 판단해서. 그래서 결과는 어때? 팀의 질문에 딕이 돌연 제이슨를 바라보았다. 제이슨, 브루스를 보러가지 않을래? 제이슨은 대답대신 팀을 바라보았다. 팀은 옅게 웃고 있었고 그럼 괜찮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브루스는 배트맨을 내려놓는 동시에 집을 옮긴 모양으로 여전히 큰 거택이었으나 브루스의 옆을 지키던 집사가 더이상 없었다. 그야 그 집사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이상할게 없지만 어쩐지 가슴이 뻐근해졌다. 그 고집불통 아저씨는 늙어 머리가 세었으나 그 강직하던 얼굴은 어디가지 않았다. 딕과 팀의 설명을 가만히 듣던 브루스는 두 사람의 말이 끝나자 제이슨을 노려보았다. 노려보다기보다 힘주어 보는 것에 가까웠다. 그는, 천천히? 천천히 입을 떼어, 제이슨에게 말했다. 어서와라. 짧은 한마디였으나 제이슨에게는 충분했다. 여기가. 브루스가 있고 딕이 있고 팀이 있는 이곳이 제이슨이 있을 곳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알프레드를 보고가렴. 그가 네게 할말이 아주 많을 게다. 브루스의 말에 제이슨은 또 한 명의 가족 앞에 섰다. 브루스의 거택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알프레드가 머물렀다. 그가 예전에 좋아했던-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제이슨이 건내었을 때 기뻐했던-꽃을 한 아름 사 알프레드에게 건냈다. 어서오십시오, 도련님. 알프레드는 더이상 제이슨에게 그 말을 건낼 수는 없었으나 제이슨은 이미 그 말을 들은 듯이 대답했다. 다녀왔어요. 알프레드.

 

 


 딕이 다녀간 후, 제이슨은 부쩍 기운이 없었다. 딕은 브루스를 대신하여 자신이 보호자가 되겠다고 나섰지만 팀이 그를 만류했다. 제이슨이 이 곳에 살건 과거로 돌아가건 그것은 제이슨이 선택할 문제였으니까. 딕 또한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제이슨을 양자로 들이는 것을 보류했다. 하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핑계로 팀이 결정하지 못한 것을 제이슨에게 떠넘긴 것 뿐이었다. 핑계였지만-, 확실히 제이슨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팀은 마음을 다잡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딕이랑 브루스를 본 것이 그렇게 충격적이었어? 팀의 목소리에 제이슨이 상념에서 깨어 팀을 보았다. 아무렇지 않은건 아니었지만, 괜찮았어 나름대로. 얻은 것도 있었고. 그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한건데? 팀의 질문에 제이슨은 팀에게서 시선을 떼고 정면을, 조금은 먼 곳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그냥, 너도 딕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뒤쳐진거 같아서 그랬어. 글쎄 네 경우는 네가 너무 빠른게 아닐까? 뭐? 팀의 대답에 제이슨이 팀을 쳐다보았다. 나나 딕이나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린거고, 넌 그만큼 시간이 들지 않은거지.

 

 "-나쁘진 않네." 

 

좀 심하게 터무니 없긴한데. 그렇게 생각하는게 훨씬 더 낫겠어. 고마워. 근데 넌 어쩐 일이야? 내 고민을 들어주러 온 건 아닐테고. -전에 딕이 네게 권유했던거 기억해? 입양인지 뭔지 하는거? 그래, 그리고 내가 만류하면서 이야기했던 말도 기억해? 팀의 질문에 제이슨이 입을 다물었다.

 

"네가 돌아가고 싶다면-…"

 

"내가 필요없어?"

 

 뭐?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 팀이 황당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가 로빈을 제안하던 그날, 로빈이 필요하냐고 물었잖아. 너는 모르겠다고 했고. 그랬지. 내가 로빈이 되어선 다투기만 했으니까. 로빈이 필요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결정하지 못했을거잖아? 그러면 남은건 하나지. 필요도 없는데 데리고 있을 이유도 없고. 뭐, 그런거라면야 내가 굳이 여기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럴리가 없잖아."

 

 나는, 나는 애초에 로빈을 구할 생각이 없었어. 너라서 곁에 둔거야. 네가 아닌 로빈을 네 곁에 둘 생각은 없어. 내가 필요하면, 그러면 왜 돌아가라는거야? 돌아가라고 하는게 아니야 네가 돌아가고 싶다면 가라는거지.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 잔혀 다른 말이거든? 나는 네 생각을 묻고 있는거야. 네 의사를 존중해주려고. 존중? 존중 좋아하시네. 좋아, 네가 내 의사를 존중해주니 나도 네 의사를 존중해줘야지. 넌 어쩌고 싶은데? 

 

"뭐?"

 

 제게 돌아온 질문의 화살에 팀이 당황했다. 네 생각을 말해줘야 내가 네 의사를 존중하든 말든 하지. 팀 어쩌고 싶은데? 나는-.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 사실 로빈을 제안한 것도 너를 여기에 머무르게 할 핑계거리였는 걸. 너와 연이 있는 사람들은 네 시간대의 사람들이었으니까 머물게할 이유가 필요했었어. 잠시 당횡헸던 팀은 이내 냉정을 되찾고, 솔직히 털어 놓기로했다. 그것이 제이슨의 선택에도 제이슨에게서 마음을 덜어내는 일에도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고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을줄은 몰랐는데. 팀의 말에 제이슨이 짧게 감상을 내려놓았다. 네가 내 의사를 존중한다고 했으니 명확히 해야하지 않겠어? 뭐, 그래. 네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날 붙잡아두려다 자신감이 없어져서 나한테 선택을 떠넘긴 걸로 들리는데. 정확해. 야, 최소한 예의상 부정은 해줘야하는거 아니냐? 팀의 긍정에 제이슨이 샐쭉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좋아. 선택을 떠넘겼다는건 내가 멋대로 경정해도 넌 바꿀수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

 

"나는 여기에 남을 거야."

 

  솔직히 말해서,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야. 여긴 너무 낯설기도하고 하지만. 여기 브루스가 어서와-라고 말해줬어. 다들 나이가 들었고 나만 혼자 다른 시간대에 있는데도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고 말해줬어. 딕은 내 후원자가 되겠다고 이야기했고, 아 그래도 걔 성은 이어 받기 싫으니 후원자만 해달라고 해야겠다. 제이슨 그레이슨이라니 좀 그렇잖아? 그리고 너도 있고.

 

 널 만나기 전이라면 분명히 바득바득 과거로 돌아갔을거야. 두 사람이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이야기 했지만, 내가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붙잡지 않을 사람들이거든. 그러니까, 너는 나를 잡아. 내가 가지 않기를 원한다면, 너는 나를 잡아야해. 어떤 어설픈 말이라도 걸려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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