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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240430 팀슨

쿠오니 2024. 4. 30.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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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담의 대 부호 브루스 웨인에게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이 있었다. 제시카 토드 웨인, 그의 입양 소식은 신문 일면을 장식했었기에 모르는 자는 없었으나 브루스 웨인을 빼다박은 외형과 어린 딸을 싸고도는 모습은 사람들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혹시 숨겨둔 친 딸이 아닐까하는. 물론 그 소문을 들은 제시카는 코웃음을 쳤다. 그들이 찬양하는 검은 머리와 푸른 눈동자는 제시카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으니까. 제시카와 브루스를 조금이라도 관심있게 살펴본 자라면 그와 제시카가 가진 특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시카가 길게 길러 물결치듯 아래로 뻗은 머리는 짧을 적만해도 심한 곱슬이었고, 푸른 눈동자는 브루스것과 달리 새파랗지 않았다. 브루스가 제시카를 싸고도는 이유는-… 그가 그저 딸바보였던 것 뿐이었다. 저를 닮아 고집이 센 데미안만을 보다 제 눈치를 설설 살피는 어린 여자애가 귀여워 보였겠지. 물론 제시카도 브루스의 그러한 아낌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물론 제시카도 그러한 뜬 소문을 믿는 이들의 심정을 모르진 않았다. 브루스 웨인이 어릴적에 부모를 잃었다고는 하나 가난 한 것은 아니었고, 그를 돌봐주는 존재가 있었다. 그런 환경을 가진 그가 정반대의 삶을 사는 제시카를 입양하는 것 의문이었을 것이다.점접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어떻게 부녀의 연을 맺게 되었는지 알고 싶겠지. 물론 제시카가 그걸 알려줄 의무는 없었지만 말이다!

 

사실 제시카와 브루스의 만남을 이야기하자면 먼저 그가 가진 비밀부터 이야기 해야만했다. 고담의 시민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그러한 비밀을, 제시카 토드 웨인은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웨인 부자에 관한 것이었는데, 제시카는 두 부자가 밤마다 집안 사람들 몰래 밖으로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을 숨기랴 제시카가 웨인 부자를 만난 것도 그 밤 산책 때였다. 늦은 밤이면 고담 하늘에 떠오르는 노란 바탕의 검은 심볼, 그것이 그들의 정체였다. 제시카가 막 두 사람을 만났을 즈음의 그들은 막 배트키드가 코트를 걸치며 배트맨이 되던 시기로 제시카를 발견한건 카울을 쓰고 망토를 두른, 배트맨이었다. 크라임앨리에서 지냈던 제시카는 아이가 돈을 벌 수 있는 손쉬운 수단을 사용하다 배트맨에게 딱 걸리게 되었다. 아니 그 비싼 차량이 배트모빌일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제시카가 가진 또 하나의 비밀은, 그의 이름이 처음부터 '제시카'가 아니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자들이 아무리 제시카 토드라는 이름으로 뒤져봤자 제대로 된 것이 나올리가 있나. 애초에 여자아이임이 드러나는 ‘제시카’라는 이름은 지켜줄 어른이 없는 여자아이에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제가 없는 사이 제시카가 변을 당하지 않도록 일부러 ‘제이슨’이라는 남자아이 이름을 붙여준 것이 친부가 보낸 그나마의 도움이었다. 그럼에도 제시카는 또래 아이들보다 작았고, 얄쌍한 몸을 숨기기 위해 살짝 품이 큰 옷을 골라 입었었다. 영양이 고르지 못한 탓에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몸 역시 천운이었다고 할수 있겠지. 제시카의 이러한 노력을 빛을 받아 한때나마 배트맨의 의심조차도 속여 넘겼었다. 물론 노련한 집사의 눈은 피해가지 못했지만. 브루스가 데려온 제시카를 한번에 알아본 알프레드가 그를 아가씨라고 지칭했을때 딱딱하게 굳던 브루스의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꽤 볼거리였다. 의외인것은 그의 손윗 형제인 데미안은 그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챘다는 점이었다. 물론 알아챘음에도 브루스에게 언질을 주지 않은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가 숨긴 마지막 비밀은 바로, 그가 로빈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제시카를 로빈으로 두기 위해 데려왔던 브루스는 제시카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에 놀라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제 판단을 뒤집지는 않았다. 지금에 와선 그게 다행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브루스는 제시카를 로빈으로 두기 위해 훈련시키는 동시에 그를 입양 절차를 밟았다. 호적에 올리면서 제시카의 이름을 ‘제시카’로 바뀌었는데, 바꾸기 전 그에게 의사를 물어보아준것은 꽤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훈련은 고되었지만 제시카는 악으로 깡으로 훈련을 버텨냈다. 이윽고 훈련기간을 거쳐 로빈으로서 고담에 등장했었을때의 짜릿함이란,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다. 다만 고담의 범죄는 끔찍했고, 아이가 견딜만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 제시카는 로빈을 그만두고 일반인이 되어 브루스 웨인의 고명딸이라는 직함을 얻게 되었다.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핑계 아래 브루스에게 훈련을 꾸준히 받아왔으나 그런 실력을 가졌다고 한들 아무 의미도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제시카는 로빈을 그만두게 된 시점에서 자신의 쓸모가 사라졌다고 생각해 파양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예전같았다면 다시 ‘제이슨 토드’로서 돌아가면 된다지만 알프레드의 지극한 도움 덕분에 어느정도 성장을 이루어낸 제시카는 더이상 어린 남자아이 행세를 할 수 없었으므로 그들의 눈치를 살폈었다. 쓸모가 사라진 어린아이를 쳐내는 것은 제 살길이 급급한 크라임앨리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제 앞일을 걱정해도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과 데미안 웨인은 제시카를 그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쓸모없는 제시카에게 방을 내어주고,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 끝내 제시카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내어줄 수 없노라 고백했다. 그러나 브루스는 그 존재 자체서 선물 같다고 말했으며 데미안은 제시카 하나 받아들인다고 웨인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데미안은 눈썰미는 좋은데 위로하는 데는 좀 서투른 면이 있었다.

 

 그렇게 제시카는 두 사람의 호의를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그들에게 무언가 해주고자 하는 마음은 남아 있었다. 크라임앨리식 ‘거래’가 아닌 가족으로서 제시카들 받아들여준 고마움을 담아. 그러나 실제로 제시카가 할수 있는 일은 잘 없었다. 제시카가 할 수 있는 일은 배트맨관련 이야기를 나눌때 조용히 있어주는 것 뿐, 지식도 경험도 풍부한 브루스와 데미안 앞에서 제시카가 조언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애랑 대화할만한 또래가 필요한거죠? 내가 할게요!”

 

 현재 두 사람은 ‘올빼미 법정’이라는 미지의 조직에 대해 파고 있는 중이었다. 우연찮게 그와 관련된 정보를 얻었고 관련인 정보를 캐내던 중 의심가는 인물을 발견한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브루스와도 관련있는 인물로, 브루스의 삼촌 제이콥 케인의 양자인 티모시 케인이었다. 누군가와는 다르게 모난데 없이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케인의 후계자. 브루스가 접근하여 말을 걸기엔 나이차이가 조금 있었고 데미안이 가면 같은 후계자로서 견제로 보일 확률이 높았다. 두 사람에 비해 제시카의 위치는 딱이었다. 후계권에서 멀어져 있으면서도 비슷한 나잇대에 어울려 놀더라도 의심을 받지 않을 사람, 딱 제시카였다.

 

“니가 걔를 왜 만나?!”

 

“떠보고 싶다며? 나만큼 적합한 사람이 어딨어?”

 

 네가 갈거야? 퍽이나 잘하겠다! 시비거는 것처럼만 안돼면 좋겠네. 제시카의 말에 데미안의 눈썹이 꿈들거렸다.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지만 제시카만큼 적합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라 분을 가라앉힌 데미안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네가 간다고 쳐, 너 입을 드레스가 있긴 하냐?”

 

 일면식도 없는 네가 걔랑 이야기를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만한 곳이라면 파티장밖에 없을텐데, 네가 그런 옷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정도 쯤은 옷장을 뒤져보면-…! 외람되지만 제시카 아가씨, 아가씨께서 거추장스럽고 치렁치렁한 것은 불편하다고 하시며 한벌도 구매하지 않으셨습니다. 아가씨께서 스스로 사교의 장에 나간다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나 당장에 쓰실 드레스를 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가장빠른 방법은 기성품을 사는 것이지만 기성품은 아가씨에게 맞지 않으실테니까요. 알프레드의 말대로였다. 설령 몸에 맞는 기성품을 찾더라도 노출도가 많은 옷은 상처가 많은 제시카에게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 이런 상황이 올 줄이야. 꼼짝없이 기회를 놓칠것 같았다. 제시카의 모습을 보고 있던 브루스가 넌지시 데미안에게 말을 걸었다.

 

“드레스만의 문제라면, 네가 전에 준비한 그건 어떻니?”

 

“-…아, 그게 있었네요.”

 

 브루스의 말에 뭔가 떠오른듯한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요 조금만 손을 본다면 파티에 입고갈 이브닝 드레스로는 적당할테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 데미안이 판단을 내렸는지 제시카를 향해 말했다. 드레스 쪽은 내가 어떻게 할테니 그동안 다른 거나 신경쓰도록 해. 다른거라니? 많잖아? 사교댄스라던가, 유력가의 자제 이름이라던가. 이번에 참석하게 되면  다른사람들은 네가 사교계활동을 시작한다고 생각할거야. 의심을 지울려면 그 후로도 꾸준히 파티에 참석해야할테고. 네가 계속해서 우릴 도와 사람을 떠보는 일을 할거라면 그들의 이름을 외워둬야할거야. 데미안은 안외우잖아! 난 안외워도 돼,걔들이 알아서 자기소개할텐데 뭘. 그럼 나는! 너는 네 이름도 기억못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지디? 데미안의 말에 제시카가 입을 다물었다. 정론이었다.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제시카는 데미안이 말한 다른 것에 신경쓰기로 했다. 데미안은 몰라도 브루스와 알프레드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싫으니까. 그리고 아주 인정하기 싫지만 데미안의 안목만은 좋아서 드레스건은 그에게 맡겨둔다면 문제없을 터였다.

 

 

 



 파티 당일, 제시카는 환복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섰다. 검은색과 붉은 색의 조합은 화려하면서 제이슨의 피부와도 잘 어울렸다. 그럴듯한 드레스의 디자인은 묘하게 제이슨의 흉터부위를 덮었으며 그것이 어색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데미안의 안목만은 인정해줘야만 했다. 사용인의 도움을 받아 메이크업까지 끝낸 제시카는 열몇중 다섯여섯은 돌아돌 용모의 미인이 되어있었다. 이정도면 나도 좀 괜찮지 않나? 하고 콧대가 솟을 정도였다. 그동안 성격에 맞지않아 파티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첫 파티인 만큼 살짝 들뜨는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요모조모 살펴본 제시카는 쉼호흡으로 가슴을 가라앉힌 뒤 방문을 나섰다. 문 밖에는  이미 환복을 마치고 제시카를 기다리고 있는 웨인 부자가 그곳에 서있었다.

 

 문밖으로 나온 제시카를 위아래로 꼼꼼히 살펴본 데미안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브루스는 석상같이 굳어있었다. 안어울리나? 내가 볼땐 꽤 괜찮던데, 데미안도 호평이고. 브루스의 반응에 자못 불안해진 제시카가 어떠냐고 조심스레 물으면 브루스가 살짝 풀어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주 아름답구나, 시집보내기 싫어질 정도로. …아, 아이참 누가 시집이라도 간대? 두고봐 당신네들 등골 쫙쫙 빨아줄테니까! 브루스에 칭찬에 멋적어진 제시카가 퉁명스레 대답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런 일은 남성 파트너가 에스코트하는 것이라고 알프레드에게 귀가 박이도록 들었다. 브루스가 그런 제시카의 손을 조심스레 받아들고 인도했고 따라움직이던 데미안이 조용하게 충고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네 목적은 그 놈 하나지만 파티의 모든 놈들이 네 약점을 찾지 못해 안달일거다.”

 

 데미안이 이러한 충고를 내는 것은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겠지. 사생아로 알려진 데미안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데미안 본인이 만만찮은 사람임과 동시에 무엇이든 잘 해내는 탓에 약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시카는 크라임앨리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고 작은 잘못이라도 저지른 다면 그것을 핑계삼아 공격할 수 있으니 타인의 입장에서 정말 좋은 먹잇감임에 틀림없었다. 물론 제시카 역시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한차례 인사의 행렬이 끝난 제시카는 솔직히 좀 지쳐있었다.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긴장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의 행렬도 생각보다 많은 탓이었다. 그나마 위안인 점은 제시카에게 호의적인 이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물론 그들도 제시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등을 돌리겠지만. 온전한 내 편이 없는 공간이란 이렇게도 피곤한 것이었나. 숨 돌릴겸 테라스에라도 나가보지 그래? 그런 제시카가 딱했던지 데미안이 제안했다. 보통 사람이 나가있는 쪽으로는 왠만하면 찾아오지 않으니 바람이라도 쐬고 와. 그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제시카는 테라스로 향했다.

 

 창을 열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답답했던 숨이 탁 트였다. 다른 사람이 찾아오지 안도록 꼼꼼하게 문을 닫아둔 제시카가 난간에 다가섰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오랜만에 올려다본 하늘은 더 없이 깨끗한게 보는 그의 마음 마저 상쾌하게 만들었다. 조금만 쉬고 그의 타겟을 찾아봐야지. 지쳤다고 한들 제시카는 제 할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데미안도 브루스도 제시카가 하지 못했다고 한들 탓하지 않겠지만 하기로 한 이상 훌륭하게 끝내고 싶었다. 그런 제시카의 마음 덕분이었을까 제시카의 뒤로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곳에 오래 머무르면 감기에 걸려요, 미스 웨인.”

 

 들어본적 있는 목소리, 인사 행렬에 섞여 말을 섞어본 목소리이자 제시카의 타겟인 티모시 케인의 목소리였다. 황급히 돌아보면 그가 맞았다. 미스터 케인? 데미안이 제안한 이상 제시카가 있는 테라스에는 아무도 오지 못하게 접근을 막았을텐데… 제시카의 타겟이기에 일부러 들여보내 준걸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겉옷을 당신께 빌려드려도 괜찮을까요? 고담의 밤바람은 생각보다 차답니다. 호의적으로 나오는 티모시의 모습에 제시카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부탁 드려도 될까요, 미스터? 제시카의 허락에 티모시 케인이 겉옷을 벗어 제시카의 어깨 위로 그의 웃옷을 살짝 걸쳤다. 종전까지 입고 있어서 그런지 안감에 그의 체온이 남아있는 듯 따뜻했다.

 

“그런데 미스터 케인께서는 여기엔 어쩐일로?”

 

“아, 그게-…”

 

 자신에게 볼일이 있느냐는 말을 둘러서 질문하면 그가 난감한 기색을 띄며 말했다. 미스 웨인께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제가 여기서 보는 풍경을 좋아하거든요. 이것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라 눈을 깜박이다 말했다. 고담의 야경이라면 다른 테라스에서도 보일텐데. 그건 그렇지만, 이곳은 제게 좀 특별한 장소라서-…제 첫사랑을 여기서 발견했거든요. 얼굴을 붉히며 수줍다는 듯 말하는 티모시에 제시카는 눈을 깜박였다. 그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정보는 듣지 못했는데… 어쨌거나 좋은 징조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서 친밀감을 형성한다면 그에게 유익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테니까.

 

“마음에 두신 분이 있으셨군요?”

 

“네에, 제쪽에서 일방적으로 좋아할 뿐이지만요.”

 

 그 애는 제가 그 애를 알고 있다는 것도 모를 거예요. 먼 발치에서 바라본게 다였거든요. 이… 테라스에서요? 제시카가 이해하기 힘들어 되물으면 티모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나요? 오늘같이 맑은 밤하늘엔 저기 건물 너머까지 잘 보인답니다. 저곳에서 그 아이를 봤어요. 건물사이사이를 날아가는 모습을, 고담의 전경은 온통까만데 노란망토를 하고 있어서 한번에 눈에 들어왔죠. 그가 설명하는 아이는 제시카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 아이라는게-…”

 

“눈치채셨나보네요, 맞아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

 

 배트맨의 사이드킥이였던 로빈. 배트키드가 있었으니 배트맨의 곁에 어린 자경단이 있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애는 눈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키드와는 달리 선명한 색을 두르고 있어서였을까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배트맨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그 애를 보기 위해선 파티를 참석하며 몰래 나와 그 애를 찾는 것밖에할 수 없었어요. 그것만으로도 파티에 참석할 이유가 되었죠. 한번은 정말 가까이서 관찰한 적도 있었어요. 빌런들과 대치하느라 그 애는 깨닫지 못했겠지만. …좀 의외죠?

 

“놀랍기는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잖아요?”

 

“그리 말해주어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그 애의 활동은 그리 길지 않았어요. 언젠가 부터 그애는 밤하늘을 날지 않기 시작했어요. 찾아도 찾을 수 없었죠. 처음엔 빌런들과 대치하느라 다쳐서 날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깨달았죠. 그 애는 더이상 날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요. 그럼에도 이렇게 밤하늘이 맑은 날이면 그 애를 찾아보기 위해 나와요.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어서. 기적같이 다시 날아들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 애의 존재 자체가 제게는 기적이나 다름 없었는걸요. 제시카는 티모시의 말에 쉽게 호응할 수 없었다. 그의 기대와는 달리 제시카는 완전히 로빈활동을 접었으니까 기적같이 깨끗이 낫는대도 로빈으로 다시 활동할 수는 없을테니까.

 

“제 생각에 로빈을 그렇게 만든건 조커라고 생각해요.”

 

 그리 말하는 티모시의 얼굴에 살짝 분노가 서렸다. 제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만 넋두리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실수 있으신가요? 티모시의 물음이 제시카가 웃는 낯을 유지하며 말했다. 물론이예요 미스터 케인. 고마워요. 미스 웨인. 저는 조커가 로빈에게 어떤 위해를 가했다고 생각해요. 그는 늘 배트맨과 함께다니는 이를 미워했으니까요. 배트키드 시절엔 키드에게 그러했듯이 이번엔 로빈을 미워했겠죠. 다만 로빈은 키드보다 여렸던 거예요, 미숙하고 감정적이었으니 구슬리기 쉬웠겠죠. 물론 조커의 계획이 완전히 성공하진 않았을거예요. 배트맨이 조커를 상대한게 한두번이 아니니 그의 속셈쯤은 눈치 챘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했고 그건, 로빈의 부상으로 이어졌고. 로빈은 더이상 하늘을 날 수 없게 되었겠죠.

 

“…배트맨의 방식은 너무 온건해요.”

 

 그의 진압방식에 다치거나 불구가 되거나 하는 이들도 있죠, 하지만 배트맨은 목숨을 빼앗지 않아요. 물론 그의 방식에는 이유가 있겠죠. 배트맨의 보호 아래 있는제가 이런말 하는게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하지만-… 배트맨이 다른 방식을 취했다면 로빈은 그애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고담 역시 지금처럼은 되지 않았겠죠. 미스 웨인은 생각해본적 없으신가요? 배트맨의 방식이 고담의 범죄를 키우고 있다고. 그들에게 배트맨이란 뽑기 같은거에요. 운이나쁘면 평생가는 장애를 얻게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잠깐의 수감생활을 즐기면 그만이죠. 고담의 빌런들은 배트맨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저 만나면 골치 아픈 상대일 뿐이죠.

 

“…그럼 미스터 케인은, 그가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고담엔 ‘본보기’가 필요해요.”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본보기요. …한마디로 범죄자들을 죽여라? 물론 누구도 죽이지 않고 끝낼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겠죠. 하지만 고담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죄없는 시민을 해치게 방임하고 있어요. 시민을 지키기 위해서라 그 편이 더 도움이 된다면, 시민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맞지 않겠어요? 그리고 사실 미스 웨인도 알고 있잖아요. 개선의 여지가 없는 범죄자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조커’를 예를 들어볼까요? 그는 사실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일을 저지르죠 목적을 위하기 보다는 그저 심심해서. 즐거움을 위해 불특정다수의 시민들을 해치죠. 오직 재미를 위해 사는 조커에게 상담치료는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그가 고담에서 사라지는 것이 고담의 안전을 위한 길일거에요.

 

“그-…럴수도 있겠죠.”

 

 조커가 고담에서 사라진다면 범죄자들도 자신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거예요.그들의 목적이 뭐든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되면 제 아무리 슈퍼빌런이라고 불리는 이들도 제 몸을 사리겠죠. …들키지 않는다는 확률에 걸어보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까요? 제시카가 낸 반대의견에 티모시가 방긋 웃었다. 오, 미스웨인. 그런 가능성에 기대어보는 자라면 이미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목숨조차도 중요하지 않은데 무엇으로 그들을 막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미스 웨인의 의견도 맞아요 겨우 한두명 죽은 걸로는 그들에게 경고가 되지 않겠네요.낮은 확률의 일을 무서워하진 않을테니까. 그렇다면 ‘본보기’를 조금더 두어야 하는 편이 좋겠네요. 피는 조금 흘리겠지만 결국은 안전한 고담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건 자기 말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올빼미 법정 전설처럼요.”


“아-, 그렇네요 미스 웨인도 고담출신이니 올빼미법정의 전설을 들어봤겠군요.”

 

 제시카가 회심의 질문을 던졌으나 티모시는 방향을 살짝 틀은 것만으로 벗어났다. 올빼미 법정 전설은 좀 섬뜩하진 하지만, 나름대로 교훈이 있었다고 봐요 후회할 일을 저지르지 말라는. …미스터 케인은 올빼미 법정의 전설이 그저 뜬 구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 윗세대만 해도 믿는 분들이 좀 계시긴 하지만 올빼미 법정이 존재하고 있다면 고담이 왜 이지경까지 왔겠어요? 설사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단체라고 할지라도 그 역할을 다하지 않는 기구는 죽은 기구일 뿐이예요. 티모시는 법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있다 없다 라고 확실하게 단언하지 않았다. 이런식으로 슬며시 던져봤자 그는 이렇게 잘 피해갈 것이었다. 좀더 도망칠 수 없는 확실한 질문이 필요했다. 제시카가 고민하는 사이 속내를 털어놓아 후련해진 티모시가 숨을 내뱉었다.

 

 고마워요 미스 웨인. 덕분에 후련해졌어요. 티모시의 말에 제시카가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아니에요, 기분이 나아지셨다니 다행이예요. 저… 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째서 제게 이야기 해주셨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절 믿어주신건 너무나도 기쁘지만 저흰, 오늘 처음 만난 사이나 마찬가지 잖아요. 제시카에겐 그에게 접근할 이유가 있었지만 티모시에게는 제시카와 엮여 얻을 이익이 조금도 없었다. 그의 양부인 제이콥 케인은 은연중에 제시카를 싫어하고 있으니 해가되면 해가 되었지 득이 될 일은 없었으니까.그러자 팀이 나즈막히 대답했다. …당신이라면 이해해 줄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라면. 그것은 마치 제시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그 말의 의미를 묻기도 전에 티모시가 곁에서 떨어졌다.

 

“자, 저는 그만 돌아가봐야할 것 같아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아버지 몰래 나온것이라서, 들키면 곤란하거든요. 미스 웨인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제 말만 하고 벗어나려는 티모시에 제시카가 급하게 그를 잡았다. 자, 잠깐만요! 제시카의 부름에 멈춰 서서 제시카를 돌아보았으나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을 것이다. 무언가 물으려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린 제시카가 물음을 입밖에 내었다.

 

“그들을, 죽이실 건가요?”

 

“…설마요. 저는 그저 말해본 것 뿐이랍니다.”

 

 티모시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을때 제시카는 묘한 소름을 느꼈다. 찬 바깥공기 때문인 한기가 드는 느낌이 들었고 걸쳐진 웃옷도 더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티모시는 제시카의 말을 부정하는 듯 했으나 제시카는 석연찮음을 느꼈다. 그러나… 제시카는 로빈에 대해 말하던 티모시의 얼굴을 떠올렸다. 동경과 애정이 섞인 표정, 그것은 더할 나위없는 진심이었고 로빈을 그렇게 아꼈던자가 로빈과 배트맨의 방식에 반할리 없을것이다. …그래야만했다. 제시카는 어깨에 올려진 자켓을 여미며 안으로 도착했고 테라스를 나간 티모시를 발견했는지 다가온 데미안의 어땠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조커의 사망소식이 기사로서 전해졌다. 작은 날붙이에 당한듯한 조커의 옆에는 그 피로 써진 듯한 문장이 그 곳에 남겨져 있었다.

 

 

 

 

Watch out your behavior. The Court is keep an eye on. 

 

 

 

 

 

 

 

 

 

 

 

 

 

 

 

 

“지금 쯤이면 그 애에게 내 편지가 닿았으려나.”

 

 고담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선 티모시가 작게 중얼거렸다. 제시카에게 답했던 대로 티모시는 그들을 ‘직접적으로’ 범죄자들을 해칠 생각은 없었다. 다만 티모시가 말을 한것만으로도 그의 뜻을 이루어줄 수족이 그에겐 더 없이 많았다. 올빼미 법정의 일원들과 수많은 탈론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울새에게 숨기는 일이 있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었으나 비밀결사원으로서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물론 언제까지고 그의 사랑에게 숨길 생각은 없었다. 메세지를 받고 그의 뜻만 이해 준다면 당장에라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를 조금 나누어본 결과 그 때가 머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그러기 위해 고른 대상이 아닌가. 로빈을 끌어내린 원수이자 개선의 여지가 없는 광대, 티모시로서는 상대조차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으나 제 울새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상대가 이세상에서 사라짐으로 인한 평온을. 처음에는 조금 놀라겠지만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그는 이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의 울새가 조언한 대로 몇 마리의 본보기를 더욱 보낼 생각이었다. 티모시가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생각에 빠져 있을때 누군가 티모시의 뒤로 접근했다.

 

“지시대로 잘 처리했더군, 수고했어.”

 

 말없이 등장하며 부복한 기척에게 티모시가 치하했다. 그럼에도 자리를 뜨지 않은 기척에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린 그가 돌아서서 기척을 향해 물었다. 내게 할말이 있는가보지, 미스터 제이콥? 제이콥 케인 티모시의 법적인 보호자였으나 법정안에서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필요한 것은 티모시가 법정의 소리를 대신할 목소리라는 것과 그가 법정의 일원이라는 것 뿐이었다. …활동을 너무 눈에띄게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빼미 법정은 비밀결사 조직입니다 그동안의 전통을 무시할 수는…

 

“올빼미 법정의 존재를 믿는자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자네 세대만해도 믿는 사람이 존재하겠지 하지만 지금에 와선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일 뿐이야. 왜냐? 아무도 법정을 경험하지 않았거든. 우리는 그들에게 법정의 존재를 재 각인 시켜줄 필요가 있어. 공연히 나타나 모습을 드러내도 악감정만 생길 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제에 주인이라고 나서면 얼마나 아니꼽겠어? 법정은 이제 행동을 보여야해. 경찰도 잘난 배트맨 조차도 해결하지 못했던 일을 해결하고 고담의 주인으로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낼거야. 오늘의 일은 그 시작에 지나지 않아.그럼에도 내 명령이 과하다고 생각하나?

 

 물론 티모시는 오로지 고담의 평화를 위해 움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에겐 사랑스러운 그의 울새가 다시 날아들 새장이 필요했다. 이로서 고담이 평화로워진다면 그의 사랑스러운 이는 다시한번 날아들어 제 곁에 올것이다. 어쩌면 그를 위해 노래를 불러줄지도 모르지. 그래, 이것은 그의 울새를 향한 세레나데였다. 사랑하는 이가 듣고 마음을 돌려 제게 와주길 바라는 , 그리고 그는 이 노래가 반드시 제 사랑의 마음에 들것이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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