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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6 팀슨, 말로.

쿠오니 2023. 3. 26. 23:15

*이 글은 저나 여러분에게 상냥하지 않습니다.. 

*공백 포함 34,962 공백 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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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 레드후드는 고층 빌딩 옥상 위로 내려서며 그래플링건을 정리했다. 제법 늦은 시간대임에도 번화한 도시임을 과시하는 고담은 불빛을 꺼트리지 않고 절경을 연출했다. 그러나 그런 관경을 수없이 봐 왔었던 그는 별 다른 감흥 없이 고담을 지켜보았다. 빛나는 불빛,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과 보도블럭을 지나는 사람들.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골목을 다니는 이들은 없었고, 그 흔한 총격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고담이 몹시 조용했다는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고담시의 밤이 이리 고요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배트맨이 고담에 나타난 이후, '그것'이 고담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되며 고담의 범죄율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평화로운 고담은 더이상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음에도 레드후드는 그것이 썩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평화의 토대가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무리 고담에 실시간 감시체계가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사각은 존재하기 마련이었고, 고담의 범죄자들이 쉽게 손을 털 놈들도 아니었기에 간간히 범죄가 일어났다. 그것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사건들을 배트맨이 해결하는 방식으로 고담의 평화가 이어졌는데-… 요 며칠 배트맨이 고담 상공에 나타나지 않았다. 배트시그널이 고담 하늘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배트맨이 나타났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었다.

 

 비록 '그것'의 감시로 인해 밖으로 다니는 것이 어려웠던 레드후드였으나 배트맨이 나타났다는 정보를 흘릴 일은 없었으므로 배트맨은 그동안 밤의 고담이라는 무대에 나서지 않은 셈이었다. 그리고 보면 그가 잠적하기 전까지도 의심스러운 행적이 발견되었다. 무언가를 조사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평소라면 들리지 않은 건물에서 발견되었다던가? 제이슨은 그동안 새 배트맨의 뜻을 존중하는 의미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으나 결국 집안 한켠에 처박아둔 레드 후드의 코스튬을 꺼내들었다. 제이슨이 한창 레드후드로 활동하던 시기에 입었던 코스튬이라 지금에 와선 조금 큰 듯한 느낌도 들었다. 밸트와 홀스터를 착용하고 자신의 주 무기를 손에서 굴리다 잡아 쥐면 어제도 쥐었던 듯이 착 감겨와 입소리가 비실비실 올라왔다. 그의 얼굴을 감출 붉은 헬멧까지 뒤집어 쓰면 이제 레드후드가 될 시간이었다.

 그것의 시선을 피해 고층 옥상에 오른 레드후드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이대로 큰 사건을 벌여 배트맨을 불러오는 것도 좋겠지만 그래서야 배트맨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는 알 수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본거지를 찾아가는 것이 맞겠지, 다행이도 레드후드는 배트맨의 아지트인 배트케이브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 곳의 보안 시설이야 다꿰고 있지만 그가 저택을 들리지 않은 것도 꽤 오랜시간이 흘렀으니 무언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도 뭐, 가봐야지. 새로운 보안장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나 꽤 시간이 걸리더라도 뚫어낼 자신은 있었으므로. 레드후드는 한 때는 자신의 집이었을 웨인 저택이 있을 방향으로 돌아 섰고,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브루스가 자신을 이은 차기 배트맨으로서 팀을 지목했을 때, 배트 패밀리중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가장 오랫동안 배트맨의 곁을 지키며 누구보다 배트맨에 가까울 첫번째 로빈은 새로운 배트맨을 존중하여 그가 잘 자립할 수 있도록 고담에오는 발걸음을 줄이고 그의 도시인 블뤼드헤이븐을 지키는 데 시간을 쏟았다. 로빈 자리를 두고 오랫동안 팀과 대립해왔던 데미안은 그를 축하해주지는 않았지만 반기를 들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오랜 목표가 배트맨이었던 만큼, 목표를 잃어버린 데미안은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가지기 위해 고담을 떠나 딕과 함께 블뤼드 헤이븐으로 떠났다. 은퇴를 선언한 브루스는 고담에 눌러 앉아선 편히 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 고담 밖의 별장으로 떠났으며 알프레드는 가사에 전무한 브루스를 생각해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배트맨의 두번째 로빈이자 골칫거리였던 제이슨은-… 브루스의 결정에 반대를 하지 않았으나 고담을 떠나지도 않았으며 자경단 활동을 그만두지도 않았다. 그러나 팀은 제이슨의 그러한 선택을 꽤 반겼는데 배트패밀리가 고담을 떠나는 중에 그만이 고담에 남았기 때문이리라. 제이슨은 그 때 당시 팀이 했던 말을 아직까지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네가 고담에 남아주어 다행이야, 솔직히 안심이 돼. …어쩌면 그 때의 말 한마디가 족쇄가 되어 제이슨으로 하여금 고담을 떠나게 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팀이 배트맨이 되었을 때 그는 전대가 원하던 그리고 이상적인 배트맨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고담은 오랫동안 배트맨의 도움을 받고서도 변하지 않았던 도시였고, 그런 도시가 새로운 배트맨을 반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범죄자들 역시 그들을 억누르던 배트맨이 아닌 새로운 배트맨의 존재를 깨닫게 되자 대범하게 바뀌었다. 이전 배트맨에 비해 마른 체형이었던 팀이 다소 만만하게 보였겠지. 그것이 팀에게는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다른 배트 패밀리와는 달리 팀은 함께 싸울 줄 아는 이었고 브루스를 비롯한 가족들은 그 점을 높이 샀다. 그러나 팀에게 지워진 부담은 그 장점을 감추어버렸다. 오롯히 스스로의 힘으로 견뎌내야한다고 생각했는지 팀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담에 남아있는 레드후드의 도움은 거절하지 않았기에 제이슨은 곧잘 케이브에 들리며 그를 신경썼다.

 

 그러나 단 둘이서 고담 전체를 케어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팀이 얼마나 뛰어나 건 제이슨이 얼마나 노력하 건 본질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범죄에 비해 자경단원의 수가 적었다. 브루스를 비롯해, 딕과 데미안 등 패밀리가 모여있을 때도 완전하게 막지못했던 범죄들을 두명의 인원으로 누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배트맨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데 어찌하겠는가, 레드후드는 고담을 지키는 시간을 조금 늘리고 한 사건 당 할애하는 시간을 줄였다. 자연히 무리하거나 무모한 행동을 하는 일이 잦게 되었고, 결국 레드후드는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자경단에게 부상이나 뗄레야 뗄 수 없는 문제이긴 했으나, 제이슨은 당분간 세이프 하우스에서 꼼짝 없이 요양해야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숨이 붙어있고 부러지거나 찢어진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봉할 될 것이었기에 이만하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패트롤을 나가지 못하는 내내 제이슨은 팀에 대한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부상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을 때, 카울에 가려졌으나 침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채 내려다보는 팀이 제이슨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 날 이후, 제이슨은 배트맨의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팀이 제이슨을 찾아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밤에도 배트맨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라디오에서도 갑자기 사라진 배트맨에 대해 떠들어댈 정도일까. 사라진 배트맨에 대해 이리저리 떠들어 대는 것이 고까워 라디오를 끄려다가도 혹시 모를 소식이 있을까 끊어내지 못했다. 범죄자들의 관심사 역시 배트맨이었는데 그간 배트맨이 사라지긴 했어도 반드시 돌아오다보니 그들은 배트맨의 부재중에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소식을 도청해 듣던 제이슨이 팀에게 그리고 GCPD에게 연락하여 방해하긴 했지만 아무리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배트맨에 그들의 범행이 대범해지기 시작했고,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던 제이슨이라도 패트롤을 돌겠다고 결심했을 때 팀이 제이슨 앞에 다시 나타났다.

 

'안녕, 제이슨.'

 

'…꼴이 그게 뭐야, 그동안 쉬었으면 행색이라도 멀쩡해야지.'

 

 제 앞에 선 팀을 보고 노려보던 제이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팀의 모습은 며칠간 밤을 샌듯 눈 밑이 거뭇거뭇하고 헬쓱해져 있었다. 그러나 눈빛은 전과 달리 맑게 빛나고 있어서 그가 어떻든 결단을 내렸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몸은 좀 어때? 제이슨의 상태를 살피는 팀이 제이슨이 답했다. 보시다 시피 멀쩡해, 내가 회복력은 좀 좋잖냐. 며칠 내로 패트롤도 돌 수 있을걸? 괜찮기는 개뿔, 말없이 사라진 배트맨을 찾으나 사방팔방 알아보느라 회복이 더뎠다. 멀쩡한 척 하는 것도 이미 먹어둔 진통제 덕분이지만, 이러한 류의 거짓말에는 이골이 난 제이슨은 당당하게 굴었다. 아픈티를 내면 팀이 더 마음에 걸려할 것을 아는 제이슨의 배려, 이기도 했다.

 

'그러는 너는? 방황은 잘 마치셨나?'

 

'응, 걱정끼쳐서 미안해.'

 

 얼씨구, 뭘 잘못했는지는 안다니 다행이네. 제이슨의 질문에 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그래도 그 일로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온거야. 길어질 거 같으면 좀 앉을까? 혼자 사는 집이라 의자는 하나밖에 없지만. 침대는 바로 누울 수 있게 당신이 앉는게 좋겠네, 아직 다 낫지 않았잖아. 팀의 말에 제이슨이 눈을 가늘게 떴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이놈은 도통 말을 믿지 않지. 예전부터 제이슨의 몸 상태를 기가막히게 알아보는 편이긴 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제이슨은 멀쩡함을 과시하는 대신 침대에 걸터 앉았고 팀은 의자를 빼내 마주 앉았다.

 

'먼저, 당신에게 사과하고 싶어. 고담을 지키는 건 배트맨인 내 일이었는데도 당신에게 기대기만 했어.'

 

 우리가 버겁다고 판단하는 순간 도움을 요청하거나 무언가 수를 써야했어, 내가 좀더 제대로 했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당신을 무리하게 만들었지. 당신의 부상은 내가 만든거나 다름 없었어. 제이슨은 팀의 말에서 죄책감을 눈치채고 그것이 그의 탓이 아니라고 부정하려 했을 때였다. 하지만 이제 괜찮아. 팀은 얼굴을 싹 바꾸며 말했다. 낯빛은 처음에 보았던 단단한 표정과 닮아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그는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한다니, 무엇을? 어떻게… 입안에 맴도는 말을 제이슨은 삼켜내면 팀이 말을 이었다. 고담은 나 혼자서 감당할테니까, 당신은 나서지 않아도 돼. 아니 당신은 이제 활동하지말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이렇게 말하는게 더 와닿으려나, 레드후드 당신은 해고야.'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멍청하게 굳어 있으면 팀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그 말을 전하러 왔어, 이렇게라도 전해주지 않으면 당신은 무리해서라도 패트롤을 돌려고 할테니까. 그때의 부상은 그리 쉽게 나을 상처가 아니었어, 당신의 회복력이 좋다고해도 꽤 걸릴테지.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 나 때문에라도 편히 쉬지 못했을 거고. 그러니 이참에 푹 쉬도록 해. 당신의 신분은 내가 어떻게든 해둘 테니까.

 

 팀이 그렇게 떠난 후, 제이슨은 그의 말대로 몸을 치료하는 데 총력을 다했다. 팀의 뜻에 따른다기보다 그와 다툼이 있더라도 최상의 상태로 응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도 바깥의 소식을 듣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팀이 그렇게 다녀간 다음날부터 배트맨의 복귀 소식이 들렸다. 범죄자들은 다시 나타난 배트맨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그것도 잠시 배트맨은 빠른 속도로 고담의 범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도와주기라도 하는 듯이 배트맨은 범죄가 일어나는 곳이라면 나타나 소탕해왔다. 그는 작은 흔적을 놓치지 않았으며 범죄를 사전에 막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고담을 지키는 사람에 비해 범죄가 턱없이 많이 일어난다는 점. 몇몇 라디오에서는 자취를 감춘 레드후드의 부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배트맨 한 사람에게 맡기기에 고담의 범죄는 너무 잦았으니까, 그러나 그 목소리가 난지 얼마지나지 않아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줄었다.

 

 무엇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이프 하우스에서 알아볼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었므로 팀 웨인 혹은 배트맨이 무엇을 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입을 다문 것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당장에 밖에 나가 정보를 얻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제이슨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상태로 밖으로 나가 제 약함을 보인다는 것은 팀의 통보아닌 통보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었으므로. 그리고 결국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제이슨이 레드후드로 고담에 나섰을 때에는  고담의 밤은 이미 고요해진 뒤였다. 이상함을 느끼며 평소의 루틴대로 패트롤을 돌았으나 범죄는 커녕 사람 그림자 하나도 볼 수 없었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즈음에야 팀은, 배트맨은 레드후드의 앞에 나타났다.

 

'…배트맨.'

 

'레드후드, 말했을 텐데. 패트롤을 도는 이와같은 행위는 삼가라고.'

 

 딱딱한 어조의 목소리를 들은 레드후드는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글쌔, 그런 말을 했었던가? 난, 전-혀 기억에 없는데 말이야. 들었다고 한들 내가 댁의 말을 얌전히 들을 위인은 아니잖아? 뭘 이제와서 새삼. 레드후드의 말이 심기를 거슬렸는지 입꼬리를 꿈틀거리던 배트맨은 냉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이것은 너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따라주길 바라. 그와 반대로 레드후드는 이어진 말이 거슬렸는지 부드럽게 움직이던 행동이 딱 굳었다.

 

'나를 위한 일이었다고?'

 

 이보세요, 배트맨. 당신은 내가 당신의 그 제안아닌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란 걸 알았을 거야. 우리가 하루이틀 부대낀 것도 아니고 최근들어선 좀더 붙어 활동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당신은 날 설득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통보를 했지. 내 의견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나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입이 있으면 대답해보지 그래? 레드후드의 비아냥에 배트맨이 가만히 열었다. 그게 당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안-전-? 지금 안전이라고 했어?'

 

  레드후드는 기가 찬다는 듯이 대답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야 말로 그 안전을 위한 일이 아니던가? 내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자경단 활동을 그만두라는 거라면-… 그게 아니야, 레드후드. 당신도 이미 한차례 고담을 둘러보았을 테니 깨닫지 않았어? 고담이 안전하다는 걸. 범죄로 인한 소란도, 사이렌도 울리지 않아. 있는 건 오직 시민들의 말소리와 불빛 뿐이지. 더이상 레드후드가 나설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럼 내 안전을 위해 그만 두란 소리는 뭔데? 그건-… 레드후드의 질문에 멈칫하던 배트맨이 결국 한숨과 함께 목소리를 내었다. '그게' 당신을 반기지 않을 테니까.

 

'그거?'

 

'내가 만든 인공지능이야, 고담에서 일어난 일들을 수시로 내게 보고해주는.'

 

 배트맨의 설명에 제이슨은 비로소 배트맨이 왜 제가 있는 곳을 빨리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고담을 인공지능의 감시 체계 아래 두며 지켜온 것이다. 그야 인간이 처리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빠르겠지. 고담 어디에나 그 눈이 있는 것은 마뜩치 않았지만 배트맨이 고담을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면 그래, 마뜩치 않아도 받아들일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못했다. 배트맨과 레드후드가 고담의 범죄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것은 수시로 일어나는 고담의 범죄 양에 있었다. 두 사람이 어떤 범죄와 대치하고 있을 때 또 다른 범죄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막을 수 없어서 조금이라도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무리한 것 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로 고담의 모든 범죄를 막을 수 없을 텐데? 너 설마…아니지?'

 

'난 그렇게 해야만했어, 레드후드. 난 더이상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레드후드는 제 생각이 틀리길 바랐으나, 배트맨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배트맨은 인공지능에게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것을 맡겼다는 것이다. 물론 큰 건은 맡기지 않았어. 간단한 제압이 필요한 경우가 전부이고, 현장에 대한 보고도 올리게 되어있지. 덕분에 고담은 고요하게 되었고 시민들도 편안히 지내게 되었잖아. …그럼 그 인공지능이 반기지 않으리란 말은 뭔데? 잘 설명해야할거야. 기본적으로 브라더원-그러니까 인공지능의 이름이야-은 또 다른 자경단원들에게 부정적인 편이거든. 그렇다고 바로 적으로 간주하진 않지만, 당신의 방식은 너무 거칠어. 곧 그가 경계 명단에 올리게 되겠지. 인공지능은 학습을 하지 내가 중간에 아무리 손을 본다해도 당신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고. 난 그런 경우조차 없길 바라.

 

"그래서 레드후드 활동을 멈추게 한거로군?"

 

 좋아, 네 생각은 아주 자알 알겠어. 그렇지만, 난 그만두지 않을 거야. 네 그, 인공지능이 날 적으로 간주하는 일이 있더라도 안전한 곳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건 내 취향이 아니거든. …그래,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지. 레드후드의 대답에 배트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제 어쩔건데, 배트맨? 네 말에 따르지 않을 내게 실력행사라도 할 생각이야? 아니.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 그러지 않을거야. 의견을 바꾼 배트맨에 그의 속셈을 파악해보고자 레드후드가 배트맨을 살폈다. 당신에게 강압적으로 굴어도 당신은 끝내 자경단활동을 계속하겠지. 그러는 바에야 스스로 그만두도록 두는게 나아. …어째, 내가 그만둘거라고 확신한다? 그럴 수 밖에, 고담은 안전하니까. 당신도 곧 알게 될거야. 그렇게 말한 배트맨은 레드후드에게서 등을 돌려 그 자리에서 떠났다.

 

 배트맨의 예측은 정확했다. 범죄자에게 철퇴를 내리는 것에 더 무게를 싣고 있는 레드후드였으나 그 근본이 되는 범죄가 줄어들어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브라더 원의 실시간으로 감시되고 있는 있는 고담에서 범죄를 저지를 간 큰 놈은 없었다. 간혹 있다고 하더라도 정확을 포착한 브라더원이 배트맨에게 보고를 하고, 배트맨이 빠르게 수습했다. 홀로 움직이는 레드후드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었고, 레드후드 역시 고담을 떠났다는 소문까지 접했을 때 제이슨은 자경단 활동을 그만두기로 했다. 고담의 범죄율이 줄어, 안전한 도시가 되었으니 기뻐해야 할 일일텐데도 제이슨은 어쩐지 그것이 썩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다름 아닌 팀 드레이크가 이룩한 평화이기 때문일까?

 

 레드후드 활동을 중단하기로 결심하며 제이슨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세이프 하우스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집은 배트맨에게 이미 발각된 장소 중에 하나로 아마 쓰지 않는 대기 세이프하우스 조차도 이미 그의 정보망에 들어가있을 터였다. 즉, 세이프 하우스로서의 효용가치가 떨어졌다는 의미였으므로, 제이슨은 새 세이프 하우스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했다. 배트맨이, 고담이 더이상 레드후드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머물 이유가 없었다. 고담을 떠나진 않겠지만 배트맨과의 관계는 끊어내는 것이 좋으리라. 제이슨은 레드후드 활동을 이어가는 척 하며 새로운 장소를 모색하고 보금자리가 완성 되었을 때 고담에서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레드후드의 존재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졌고 새삼 그의 잠적을 눈치챌 이가 있겠냐만은.

 

 

 

 배트맨은 오랫동안 레드후드의 세이프 하우스였던 곳을 찾았다. 늘 가족들에게 장소를 들키면 옮기곤 했던 레드후드는 둘이서 고담을 지키게 되었을 때부터 더이상 세이프 하우스를 옮기지 않았다. 빌런들에게는 들키지 않았다는 것이 첫째 이유요 같은 편인 팀에게서 굳이 숨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그것은 제이슨이 보인 신뢰의 표시였고 팀은 그것이 못내 기뻤다. 제이슨이 그 곁을 내주는 것이 기뻤고 고담에 혼자 남은 저를 걱정해준 것이 기뻤다. 그렇기에 텅 빈 세이프 하우스를 눈에 담은 팀은 슬펐다. 그야 레드후드를 그만둔 제이슨이 팀에게 반감을 갖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세이프 하우스마저 비워낼 줄이야. 깔끔하게 정리된 것을 보았을 때, 잠시 세이프 하우스를 비웠다기 보다 아예 다른 곳으로 옮긴 것으로 보였다. 툭, 떼구르르. 발치에서 무언가 걸린 것을 느껴 살짝 숙여 그것을 확인하면 숨길 기색조차 없는 도청장치였다. 제이슨의 성격상 이런걸 빠트리고 갈 리가 없으니 이것은 부러 두고 간 것이겠지. 아마도 팀이 이곳을 들리는 지 확인하고자 함이리라. 그리고 제게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팀은 도청장치를 밟아 부수고 돌아섰다. 다른 세이프 하우스 역시 다르지 않을테지만, 제이슨이 만들어두었던 세이프 하우스를 모두 돌아보기 위해서.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렇담 나도 생각이 있어. 고담의 치안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었으나 여전히 고담을 주시하고 있는 제이슨에게 팀이 남긴 메세지였다. 배트맨으로서는 좀 더 저음을 내는 편이니 이건 저를 숨길 생각도 없다는 점을 볼때 배트맨의 정체를 알면서도 고담에 남은 사람, 제이슨에게 남기는 메세지였다. 그는 그 이후 제이슨을 다시 고담으로 불러내기 위한 여러 함정을 파기도 하고, 때론 그의 세이프 하우스 가깝게까지 추적했다. 팀이 가깝게 찾아낸 세이프 하우스는 모두 정리하였으므로 팀은 정보하나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팀은-…배트맨은 고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배트맨이 사라졌다고 한들 배트맨을 주시하고 있던 제이슨이나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브라더원에 의해 안전이 유지되고 있는 현재, 배트맨은 커다란 사건만 담당하고 있으니 배트맨의 부재는 고담의 안전을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시민들은 배트맨이 보이지 않더라도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배트맨이 홀연히 모습을 감춘 것을 수상쩍게 여기는 것은 제이슨 뿐인 것 같았다. 단지 그가 예민하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하기에는 배트맨이 은둔하기 전, 보였던 모습에서 의심가는 정황을 포착했다. 제이슨은 신중해야만 했다. 변했다곤 하지만 그 팀 드레이크가 목적을 쉬이 잊을 사람이던가? 어쩌면 그의 잠적 또한 제이슨을 밖으로 불러내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었다. 탁, 탁, 탁. 규칙적으로 탁자를 두드리던 제이슨은 우뚝 행동을 멈추었다. 이윽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어느쪽이든 배트맨의 수상한 행동을 괄시 할 수 없었다. 그게 팀의 노린바라 할지라도. 그가 제이슨을 불러낼 이유로 이러한 정황을 꾸민 거라면…못만나 줄것도 없었다. 그동안 팀을 피한 것은 그를 위한 것이기도 하였는데. 제이슨은 브라더원의 존재를 반기진 않았으나 현 배트맨의 뜻을 존중해주는 의미였다. 패트롤을 돌며, 일상생활을 하며 저를 주시하는 브라더원을 본 제이슨이 가만히 두지 않을테니까. 그런데 본인이 이렇게 꾸민다면 제이슨으로서는 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오랜만에 '박쥐동굴'을 찾아갈 용무가 생긴 제이슨은 장에 쳐박아둔 코스튬을 꺼내들었다. …빨고 입는 것이 좋을까.

 

 다시 한번, 레드후드가 된 제이슨은 고층 빌딩에 서서 고담을 내려다보았다. 바다내음을 섞은 밤바람이 훅 끼쳐오면 저도 모르게 들이키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사실 어렵게 갈 것도 없이 '고담을 내려다보는 눈'에 띄어 찾아오게 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기다리기보다는 행동하길 좋아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제이슨의 세이프 하우스를 찾아내는 것도 곤란했다. …배트 케이브를 찾는 것 자체가 상당히 오랜만이라, 제이슨이 곧잘 사용하던 루트가 아직까지 쓸만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제이슨은 확신했다 배트 케이브는 여전히 웨인 저택 아래에 있을 것이라고. 그래플링건을 집어 들어 건너 건물을 향해 쏘았고, 갈고리에 확실히 걸린 것을 확인한 레드후드가 발을 공중에 띄웠다.

 

 놀랍게도, 정말로 놀랍게도 제이슨이 애용하는 루트는 여전히 건재했다. 배트 케이브의 보안을 피하는 길이라 제법 사용하던 길로 배트맨 패밀리에게 들키고 싶지 않을 때에나 쓰던 길이었다. 그러나 팀, 배트맨과 함께 팀업을 꾸리게 되며 그에게도 이 루트가 알려지게 되었음에도 팀이 아직 이것을 내버려 두었다는 점이 껄끄러웠다. 본인이 자신하는 보안 프로그램도 업데이트를 이어가며 보완하는 팀이, 케이브 보안의 구멍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이슨의 굴을 그냥 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것은 제이슨 뿐이었고, 팀이 이것을 막아도 제이슨은 새로운 루트를 짰을 것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어쨌거나 제이슨에게도 큰 문젯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팀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대로 두었다는 것은-… 제이슨이 언제든 케이브에 오길 바랐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서와, 제이슨. 기다리고 있었어." 

 

 레드후드가, 제이슨이 케이브에 비로소 발을 딛으면 배트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배트맨이, 의자를 돌려 제이슨을 돌아봤다. 연구하던게 막 완성된 차라 안그래도 당신을 찾으려 했었어, 딱 좋은 타이밍에 돌아와줬네. 카울 아래 들어난 그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가 있는 것이 팀은 정말 제이슨을 반갑게 여기고 있었다. 내가 저를 어떤 심정으로 찾았는데. 여상히 반기는 꼴이 마뜩치 않아 들어올린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제이슨은 그것을 언급하는 대신 팀이 지키고 선 물건에 주목했다. …뭐가 완성되었는데? 제이슨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팀이 지키고 선 그것은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오, 제이. 농담하지마. 이게 무엇인지 알고 온 거 아니었어?"

 

 그 말대로, 제이슨은 어느정도 그 물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지, 제이슨은 그의 선임으로 부터 많은 것을 배웠으며 팀은 친절히 단서를 남겨주었으니까. 팀은 제이슨 만큼이나 사각지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감시카메라를 늘려왔다. 고담의 눈이 그의 편일 진대 영상을 지우지 않고서, 굳이 그것의 시야에 걸리도록 행동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을 것이다. 냄새를 맡은 제이슨이 더이상 숨어있지 못하도록. 이게 그의 '생각'이라는 거겠지.

 배트맨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곳은 폐쇠된 어느 연구시설로 영원한 젊음을 연구하는 미치광이 집단이 있던 곳이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으레 불로불사를 꿈꾸긴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이번 것은 달랐던 모양인지 현장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물론 팀이라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와 관련한 자료들을 수거해가겠지만. 즉 어떤 이유에서든지 제이슨은 보다 많은 정보를 위해서도 케이브를 찾아왔었어야했다. 누군가가 싹다 긁어가서 말이야,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고있지.

 

"그걸 네 손에 남겨두어선 안된다는거. 순순히 넘기지 그래?"

 

"싫어, 누구 좋으라고?"

 

 당신의 손에 쉬이 넘길거라면 애초애 만들지도 않았을거야. 그건 그렇다, 제이슨은 수긍하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안그래도 날 찾으려 했다며, 내게 주려고 한거 아니었어? 오, 제이.  그것과는 다르지. 당신을 찾았다는 사실이 곧 당신에게 주려고했다는 것이 되진 않잖아?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닐텐데, 왜 그럴까. 팀의 대답에 제이슨은 슬며시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자신을 찾았음에도 그걸 넘기려하지 않는다는 건, 팀은 예의 물건을 제이슨에게 사용하려했다는 뜻이었다. 그가 그날을 기점으로 변했다고는 생각했으나 이정도 일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의 처음은 엉망이었으나 함께 패트롤을 돌던 시절에는 상당히 가까워졌다고 느꼈었는데 이제 자신에게까지 손을 대겠다는 팀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어지러웠다. 은연중에 팀은 절대 제게 손을 대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 같았다.

 

"…난 우리가 꽤 괜찮은 사이가 되었는 줄 알았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봐?"

 

"그랬었지, 하지만 봐. 제이, 당신은 내가 이렇게나 일을 벌이지 않으면 나를 찾아오지 않았겠지. 그렇지 않아?"

 

 애써 담담한 척 목소리를 꾸며내면 팀의 대답이 돌아왔다. 적어도 제이슨 혼자만의 일방적인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팀은-… 자신을 변하게 한 원인이 제이슨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에게 향하는 호의에 무딘 편이지만 아주 눈치가 없진 않아. 내가 당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챘겠지. 고담에 둘만 남게되었을때, 그리고 당신이 나와함께 고담을 지키고자 했을때. 의지가 되기도 했지만 기뻤어, 그도 그럴게 당신과 계속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들리지 않던 케이브에 자주 들르게 된 것도 모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어. 그래서 정말 잘하고 싶었었는데…당신이 크게 다치는 일이 생겼지. 난, 여태까지 내가 물렀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했어 강한 수를 둘 필요가 있었지. 이 모든게 당신과 함께하기 위함이었는데 당신은 날 떠나버렸어. …그렇지만 되돌릴 수도 없었지, 고담을 위해서도 말이야.

 

"난 당신도 포기 할 수 없었어. 당연하지, 얼마나 오랫동안 품어왔던 마음인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어."

 

 이건, 이 물건은 그걸 위한 연구결과야. 아직 쓰지 않았음에도 효과가 증명되었지. 당신이 내게 찾아왔잖아. …내가 나타나지 않은 건 널 위함이기도 했어, 새로운 배트맨을 존중하는 의미였지. 전대 배트맨의 그림자였던 내가 고담에 남아 좋을 것 없잖아? …그게 어떻게 날 위한 일이야, 내가 당신이 곁에 있길 원하는데. …레드후드 활동을 막을 땐 언제고. 그건 당신의 위험과 관련된 문제였잖아, 그렇다고 세이프 하우스까지 버리고 떠날줄은 상상조차 못했어. 오, 그럴리가. 똑똑한 티미보이, 넌 이미 예상했었을 거야. 예상 외 였던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나겠지, 내가 사라져도 찾을 자신이 너에겐 있었을거야.

 

"…당신 말이 맞아, 당신의 반감을 어느정도는 예상했어. 그 이상으로 우리가 지내온 시간들을 믿었지."

 

 그리고 보기좋게 배신당했고. …당신은 당신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브루스의 의견을 받아 불살을 따랐지. 브라더원의 건도 어느정도 반감을 가지라고는 생각했어, 전과는 달리 확실하게 범죄 억제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니 당신도 그걸 인정하고 꺽여줄거라고 믿었었어. 하지만 당신은 나를 등지는 선택을 했지. 나도 브루스 못지 않은 신뢰를 형성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거야. 그럼 나와 브루스의 차이는 뭘까? 당신이 다 여물기 전에 만났던 것?

 사이가 나아졌다고 한들 첫인상이 서로 좋았던 건 아니었지. 그러니까 이건 우리 관계를 처음부터 제대로 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물론, 당신이 다시 내 곁에 돌아와 준다면 사용하지 않을 수는 있어. 전과같은 형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걸 없앨 생각은 없고? 오, 제이. 우리 사인 이미 신뢰를 잃었어. 당신은 이제 날 신뢰하지 못할거야. 그런 사람의 곁에 당신이 머무르려고 할까? 이건 그걸 위한 보험으로도 쓸 수 있지. 팀의 설명에 제이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팀이 제게도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깨닫게 된 지금, 제이슨은 팀을 온전히 신뢰하기란 어려웠다. 네가 그걸 쓰지 않으리라는 건 또 어떻게 믿고?

 

"…그렇지. 그럼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네."

 

 팀이 뒤에 밀어두었던 병을 챙겨들었다. 순전히 호의로 말해주자면 만든건 이게 전부야. 여분도, 해독제도 없지. 증거도 이미 인멸해 두었어. 당신에겐 잘된 일이지? 이걸 없애면 더이상 악용될 가능성도 없어진다는 거니까. 팀의 말에 제이슨이 말을 받았다. 그건 네게도 마찬가지지 이걸 내게 사용하게 되면 증거하나 남지 않는다는 말이니 넌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잖아? 기억하는 나도 더이상 없고. 그리 말하며 제이슨은 목을 좌우로 꺾어 몸을 풀었다. 습관적으로 홀스터에 향하는 손을 멈추고 배트맨을 돌아보았다. 팀이 저를 응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입맛이 썼지만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하나 뿐이었다 무력 행사로 스스로의 뜻을 관철하는 것.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섣불리 먼저 나서지 않았는데, 서로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전부터 생각한건데, 팀이 가만히 소리를 내었다. 우리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잖아. 그런데 그걸 쓰고 있는 건 너무 정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팀이 제이슨의 헬멧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혀, 그러는 너야말로 카울을 쓰고 있으면서. 딱히 좋은 일로 만나는 것도 아닌데, 그런건 아무래도 좋지 않아?아니면, 내가 꼭 맨 얼굴을 보여야 할 이유라도 있나? 이를테면 네가 가진 그걸 쓰기 위해서라던가? 그럴리가. 그저 내가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랬지. 팀은 곧바로 제이슨의 말을 부정했으나, 제이슨은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팀의 일이니 실없는 이야기를 꺼낼 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필시 팀이 꾸미고 있는 꿍꿍이와 관련되 일이리라. 제 아무리 팀이라도 여럿 일을 꾸미지는 않을 테니 팀이 만들었던 것과 관련된 일이고-… 그 병에 든 것은 제이슨이 헬멧을 벗어야만 효과를 볼 것일테다. 예를 들면 그 걸 마셔야 한다거나. 꽤 난도가 높은 행동이었으나 그것또한 이미 제압된 이후라면 의미없는 행동 중에 하나였다. 그 증거로-… "뭐 좋아, 당신을 제압한 뒤에 얼굴을 봐도 상관없으니까. 그게 당신의 얼굴을 지켜줄테니 외려 도움이 되겠네." 팀은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의견을 철회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팀이었다.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솔직히 말해, 제이슨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스스로 찾아온 것이긴 하나 이곳은 그 배트맨의 케이브였고, 갈라지기 전 자주 들렀던 곳이긴 하나 배트맨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배트맨 또한 어떠한가, 제이슨은 팀에게 무른 구석이 있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인 탓도 있었고 팀이 제 바로 밑의 후임이며 저보다 어리다는 점에서 특히나 물렀다. 이제 배트맨을 이을 정도로 어린 아이가 아니건만 제이슨은 그가 늘 어리게만 보였다. 물론 실력을 휘둘러야할 때까지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지야 않겠지만 불리하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얻어맞으면 끝인 제이슨과 달리 팀은 이 후로도 패트롤이라는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제이슨이 팀을 향해 잽을 날리며 거리를 확보했다. 제이슨에겐 그를 빨리 쓰러트리면서도 그가 쓸데없이 힘을 뺄 일고 없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아니 굳이 그를 쓰러트려야하나? 팀이야 헬멧을 벗겨야하니 제이슨을 제압할 필요가 있지만, 제이슨으로서는 팀이 만든 그 약물을 못쓰게만 만들면 되었다. 팀의 말에 따르면 여분도 없을테니 그가 가지고 있는 것만 망가뜨리면 되었다. 마셔서 효과를 보는 종류의 것이라면 깨트려도 상관 없겠지. 문제는… 저 방탄 망토 아래 있다는 점이었으나, 함정을 파는 것이야 제가 특기중 하나가 아니던가. 적당히 틈을 만들어 그의 품에서 빼앗든 부수든 하면 되었다. 그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그 고약한 펀치를 맞아주어야겠지만, 맷집또한 자신있는 분야중 하나였다.

 

 적당히 주먹을 주고 받아가며 거리를 가늠했다. 예의 물건이 지척에 다가오면 손을 뻗는 척 하여 주의를 끌었다. 그것을 몇번이나 반복하여 팀에게 '온전한 것을 탈취하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심었다. 실제로 팀은 제이슨의 흥미를 끌려는 듯 물건을 보이면서도 제이슨이 가까이 가려하면 거리를 두었다. 주먹으로 발로 팀과 대치하며 그의 머릿속에서 레드후드의 허벅지에  감긴 홀스터를 지웠다. 그의 주 무기가 주먹이 아닌 총기라는 것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도록.  팀의 머리속에서 홀스터가 잊혀진 순간, 제이슨은 팀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병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으나 손을 뻗으면 금세 멀어질것이다. 제이슨은 손을 뻗는 대신 재빨리 총기를 꺼내 쏘았다. 조준을 하지 않아도 맞을 거리, 그리고 배트맨의 망토가 방해하지 않을 거리에 빠르게 쏘아내면 팡! 하고 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안의 액체가 튀었다. 제이슨은 제법 거리가 있었고 옷에 지켜졌지만 일부 얼굴에 튄 팀이 움직임이 멈췄다. 

 

"이거 곤란한데…"

 

깨진 병의 조각을 내려다 보던 팀이 중얼거렸다. 왜 니가 원하던 그림이 아니라 곤란해? 그리 이죽이려던 제이슨은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팀의 외관이 점점 변하고 있었으니까. 머리카락이 조금씩 짧아지는 것이나 얼굴이 어려지며, 작아지는 모습이 제이슨이 당황했다. 뭔데, 마셔야만 효과가 있는게 아니었어?! 섣불리 팀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으면 팀은 어린 소년이 되어서야 변화를 멈추었다. 키와 얼굴로 추측컨대 아무래도 레드로빈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으로 보였다.

 

"…팀?"

 

"제이-…슨?"

 

 제이슨이 상황을 파악해보고자 팀을 부르면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든 팀은, 레드후드의 모습에 의문이 어린다. 제이슨인거, 맞지? 확신이 서지 않는 목소리로 물으면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목 위의 붉은 깡통을 보고도 모르겠어? 나 말고 이런걸 쓸 사람이 있던가? …없긴하지만, 뭐랄까 분위기가 좀 다른거 같아서. 혹시 알아? 누군가 날 속이려 그런 분장을 했을지도 모르잖아. …하여간에 의심은, 그게 박쥐답긴 하지만. 제이슨은 제 말에 꼬박꼬박 대화하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팀을 보았다. 누가봐도 낯선곳을 살피는 모습이라, 제이슨은 그가 아직 '배트맨인 팀'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었다. 

 

"그러면 뭐, 이거라도 벗어줘?"

 

 제이슨이 쉬이 헬멧을 벗으면 그 아래 드러나는 제이슨의 얼굴을 어린 팀이 눈에 담았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홀린듯 다가와 얼굴에 손을 대는 팀이 말을 흘렀다. 많이 아팠겠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목소리가 제이슨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아프지 않게 팀의 손을 밀어내며 살짝 뒤로 물러섰다. 그래서, 이제 믿음이 좀 가시나? …응, 내 기억보다는 훨씬더 성숙하고 상처가 많지만 분명 당신이 맞네. …영감처럼 DNA검사라도 할 줄 알았더니. 그런게 없어도 내가 당신을 못알아볼리가 없잖아.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아까전이면 모를까, 당신의 얼굴을 보는 데도 알아보지 못할리가 없지.

 

"여기는 미래…인거지? 당신과 나는 다투고 있었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이곳은 케이브 같은데 늘 보던 케이브와는 모습이 또 달라. 당신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과, 상처. 눈을 다친 건 회복조차 되지 않을테니까. 당신과 다투고 있었다는건… 당신이 나를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숨도 조금 거칠어져 있었고, 손에 아직 레드후드의 무기가 들려있는걸. 다른 해프닝으로 이렇게 된거라면 다가와 나를 살피면 살폈지 경계할 사람이 아니잖아, 당신은. …네가 날 좋게 평가해주는 건 고마운데,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글쎄 난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있지? 내가 당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 좋아하는 사람에 관한 것을 허투루 볼 일이 없잖아? 네 눈에 콩깍지가 낀 것일 수 도 있잖아, 날 좋아한다며 뭐든 곱게 보이지 않겠어. 오, 제이슨. 내가 사감에 휘둘려 눈에 보이는 것을 못본척 하는 사람으로 보여? 날 알잖아, 내가 정말 그럴 사람으로 보여? 팀의 말에 제이슨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 팀 드레이크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빌어먹게도 제이슨이 잘 알고 있었다. 아무렴 고담에 남아있는 배트 패밀리 중에서는 자신이 단연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었던건지 물어도 될까?”

 

 이상하단 말이야, 내가 왜 당신과 싸우고 있었을까? 그것도 몸싸움을 해가면서? 그날, 난 당신이 내게 주먹을 휘두르던 그 날을 생각하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아.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과, 앙갚음을 한것과는 별개로. 미래의 내가 당신과 덩치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런식의 접촉은 꺼렸을거야. 그렇게 되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 밖에 없지. 굳이 접촉해야할 필요가 있었다-라는 결론으로 귀결 되지. 난 그 이유가 당신과 내가 싸워야할 이유라고 생각하거든. …다르진 않아. 팀의 말에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르지 않다고 해야할까 그 이유였다.

 

“네 발 밑에 있는 깨진 유리파편들이 바로 그 이유야.”

 

“…산산 조각이 났는데?”

 

“그래 조각조각이 났지, 안에 있던 내용물도 흘려버려 이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더이상 너랑 싸울 이유도 없지. …총으로 쏘았구나? 팀이 파편을 보고 추측한 것을 내뱉으면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터지는 바람에 네게 튀었고-…그꼴이 되었지. …어려지는 효과가 액체였나보네. 그리고 난 그걸 당신에게 쓰려했고. 그렇지, 결국 이렇게 되었지만. 제이슨이 제 실책에 가라앉으면 팀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된 거 어쩔수 없지, 배트맨에게 연락해서 해독제를 만드는게-… 상황을 대강 파악한 팀이 대처를 위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면, 제이슨은 다시금 어린 팀이 제 팀이 아님을 깨달았다. 영리한 놈으로 대 전제를 잊는 실수 따위는 하지 않다. 브루스의 뒤를 이어 배트맨이 된 것을 알고있는 팀이었더라면 '배트맨'에게 알린다는 말은 흘리지 않았겠지. 또한 어린 팀이 언뜻 냉정해보이더라도 상당히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탐정의 기본 소양인 관찰을, 그 본인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을 이가 제 몸에 걸친 배트맨의 코스튬을 깨닫지 못할 정도니 어렵잖게 예측 가능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제이슨이 제 둥지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했다. 배트맨과는 이미 척을 지었다지만 어린 팀은 아직 저지르지 않은 일이었고 어쩌면 팀이 지금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도울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가능할리 없겠지만… 타임 패러독스라는 것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더라도 제이슨은 이제 팀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제이슨에 비해 턱없이 어린 아이를 아무도 남지 않은 웨인 저택에 홀로 남겨둘 수 없는 것이 이유였다, 예나 지금이나 제이슨은 아이에게 약했으니까.

 

"배트맨은 너야, 팀."

 

 그러기 위해서 먼저, 제이슨은 고담의 배트맨을 밝혔다. 브루스는 널 후계자로 삼고 은퇴했고 알프레드와 함께 휴식을 떠났어. 딕은 네가 배트맨으로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블뤼드헤이븐으로 떠났고-…데미안도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해 함께 블뤼드헤이븐으로 갔어. 고담에서 배트맨을 계속 보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럼 당신은? 제이슨의 설명에 팀이 물어왔고 제이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 나야 뭐, 고담에 남았지. 나이트윙처럼 수호하는 도시가 없기도 하고, 데미안처럼 아이덴티티를 잃은 것도 아니니까. 그러다가 뭐-… 병신이 되서 그만 뒀지. 네가 보듯이 난 한쪽 눈을 잃었고, 사실 다리 한쪽도 그리 온전하진 않거든.

 

"그리고-… 넌 그것을 네 탓이라고 여겼지."

 

 고담 자경단일을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니고 위험한 일이야 숱하게 경험했고 크게 다친 일도 많았잖아. 재수가 없던 탓이겠지, 빌어먹게도 후유증으로 불편함을 안게 되었어. 뭐어 눈 한짝이라면 모를까 다리까지 이러니 자경단 활동은 무리가 있어서. …그렇지만 당신은 그걸로 포기하려는 사람이 아니잖아, 내가 아는 당신이라면 재활을 해서라도-… 팀의 말에 제이슨이 흐리게 웃었다. 물론 그러려고 했지. 근데, 걘 그게 싫었던 모양이야. 내가 위험한 꼴을 볼 수 없다고 기어코 그만두라고 하던데.

 

"…큰 상처였나봐?"

 

"아-, 그대로 두면 죽을 뻔 했나?"

 

 제이슨의 말에  팀이 납득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럴수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강제할 권리는 없어. 당신이 그런 강압적인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을텐데…. 무엇보다 고담의 범죄율을 생각한다면 같이 자경단 활동을 할 동료는 많은 편이 좋을터야. 제이슨은 그 즈음에서 고담 전역을 지켜보는 눈에 대해서 설명해줄 필요가 있음을 눈치챘다. 하기사 '팀'이 만들어 내었으니 배트케이브에 있는 이상 언젠가는 알게 될 존재이기도 했다. 그게 말이지, 지금의 고담은 그래도 괜찮거든. 제이슨의 물음에 팀이 눈을 동그랗게 떳다. 그게 어떻게? 브루스가 오랜기간 지켜왔음에도 제어되지 않던 도시의 것이 어떻게? 팀의 의문에 제이슨이 입을 열었다.

 

"지금 고담에는 고담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살피는 존재가 있거든."

 

"그건 지금 우리도 하고 있는 것들이잖아."

 

 우리랑 비교할 수 없지 그건 인간이 아니니까. 인간인 이상 놓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건 실수 하는 법이 없어, 사각지대 또한 없지. 네가 그를 돕기 위해 고담 전역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걸 돕고 있었다고? 그게 대체 뭐길래-…. 인공지능, 네가 만든. 팀의 말에 순순히 털어놓으면 생각지도 못한 듯 팀이 눈을 깜박였다. 정확히는 브루스가 만들어둔 베이스를 네가 완성시킨 거지. 그건 고담의 전역을 보며 네게 보고해. 큰 건은 네가 나가고 소소한건 자체로 정리하거나 GCPD에 연락을 넣는 방법으로.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즈음엔 이미 고담의 눈이 자리잡고 있었어.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기 전에 '팀'이 한번 언질을 주었고, 레드후드로서 고담에 모습을 다시 드러냈을때 어딜가나 붙는 시선을 느꼈지. 그로부터 날 확인한 배트맨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다시한번 경고했지. 그는 굉장히 베타적이고 날 적대시 할 수 있다고 말했어. 배트맨은 어느정도 그에게 권한을 넘겼으니 날 공격할 수 있다고, 내가 다치는게 싫으니 그만두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만둔거야? 자경단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했었잖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별개로 그게 고담에 도움이 되니까."

 

 처음엔 활동을 이어가려했지만 그건 확실히 도움이 되었고 내가 나서야할 필요가 없어졌어, 그게 날 경계하던 말든 활동을 상관없지만 배트맨이 묵인하는 방식에 반기를 든다면 '배트맨'의 입지가 흔들릴테니까. 은퇴할만한 이유도 있겠다, 레드후드가 사라지는 쪽을 택했지. …그건 '팀'이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네 말대로, 내가 사라진 걸 알고 찾아다니기 시작했어. 세이프 하우스에 찾아와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내가 없어도 목소리는 전달 받을거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정답이었고. …뭐, 걔가 아무리 이 잡듯 찾아도 찾아낼 리가. 브루스 시절에도 걸리지 않았던 나야, 그런 경험은 허투루 있는게 아니거든. 그래서 걘 방법을 바꿨어. 날 끌어내는 방법으로. 그것도 신통치 않았지만-… 내가 여기 있는 것도 그것의 연장선이겠지. 수상한 정황을 흘려 내가 찾아오도록. 결국 내가 찾아왔지만 당한건 본인이니 걔가 이겼다고 말하기도 그렇지.

 

“뭐어, 그러니까 너무 조바심 내지 말란 거야.”

 

 네 고담의 눈이 시간을 끌어줄 거고 여차하면 나도 있어, 내가 널 돌려보내 줄테니까 걱정하지마. 제이슨의 말을 곰곰히 듣던 팀이 말했다. 고담에 우리 둘만 남았다는 건 알겠어. 브라더 원의 건 도 납득은 했고, 하지만-…  도움을 청할 순 있잖아? 당신을 못믿겠다는 게 아니라, 손이 많으면 그만큼 진행도 빠를테니까. 내 일로 당신을 오랫동안 묶어두기에도 그렇고. …쬐끄만게 어른 생각하긴. 난 괜찮아, 어쩔수 없었다곤 해도 내 탓이기도 하니 널 돌보고 되돌리는 것도 내가 해야지. 브루스야 무리겠지만 그레이슨을 부른다는 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단 그가 올 수 있다면의 이야기지만. 그게 무슨 소리야? 딕이 거절을 할거라는 거야? 아니, 그 놈 성격에 거절하겠냐. 그게 아니라-…고담에 들어오기 어렵다는 거야. 말했잖아, 브라더 원은 베타적이라고. 네가 기억하던 시절의 난, 그다지 함께 행동하지 않았지만 팀이 배트맨이 되고나선 꽤 자주 팀업을 이뤘었어. 나이트윙에 로빈까지 떠나간 상황에 널 도와줄 사람은 하나 남아야지. 최근 가장 가깝게 지낸건 나였고 브라더원은 그런 나 조차도 적대시하고 있는데, 나이트윙이라고 다를까?

 

“그럼 어떻게 해?”

 

“해야할 일은 하나야, 널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

 

 나이트윙이야 부르면 어떻게든 오려하겠지. 그렇지만 걔가 그 도시를 오랫동안 비워둘 수도 없거니와, 브라더원 조차도 나이트윙을 몇번씩이고 고담에 들이지 않을거야. 그렇다면 경계를 낮추는 법 밖에 없는데 그건 브라더원의 프로세스에 접근 하는 수 밖에 없어. 그리고 거기에 접근할 수 있는 건 ‘팀’ 밖에 없지. 그걸 해킹하러 접근하는 것도 위험해. 날 되돌리는 방법은 쉽고? 내가 이러한 일을 꾸몄다면 증거는 진즉에 인멸했을거야. 맞아, 만든것도 깨진 그거 하나였고 해독제도 없지. 멀쩡한 증거라곤 하나도 남지 않았어, 하지만 걔가 날 불러내기 위해 단서를 흘려둔게 있거든? 브라더원에 접근하는 거나, 널 되돌리는 방법이나 둘 다 단서가 부족하긴 매한가지야, 다만 이쪽은 먼지한톨이라도 단서가 될만한 게 있다는 차이점이 있지. 그렇다면 당연히 이쪽을 파보는 게 맞지 않겠어?

 

“그렇지 무엇하나 단서가 있다면 그곳을 파고드는 게 맞다고 봐, 하지만 브라더원을 파고 드는 것 또한 단서가 없지 않다고 생각해.”

 

“그 근거는?”

 

“나.”

 

 당신이 말했잖아, 그건 내가 만들어낸 거라고. 물론 지금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나이겠지만 그것 또한 나라는 말이잖아? 숙련도나 기술적인 면에선 한참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만들어 낸 것이 ‘나’라면, 핵심이 되는 키 정도는 나도 찾을 수 있을거야. 무슨 일을 심하게 겪고 전혀 다른사람이 되지 않는한, 그 근간을 이루는 건 변하지 않을테니까. 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배트맨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해도 그가 여전히 고담을 지키는 다크나이트인 이상, 근간 자체는 변하지 않았으리라. 그래, 네 말대로 키워드야 네가 찾아낼 수 있다 쳐. 하지만 기술적 문제는 좌시할 수 없을텐데 그 점은 어떻게 할건데? 그 점도 물론 생각해뒀지, 그 해답이 바로 이 장소야. 제이슨의 물음에 팀이 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신감 넘치는, 도전적인 미소에 그만 따라 웃을뻔 했던 제이슨이 고개를 기울이며 채근하면 팀이 말했다. 브라더원은 ‘배트맨’이 만들어낸 거라고 했잖아, 그렇다면 그건 배트케이브에서 만들어졌을 테고 그 기록은 배트 컴퓨터에 남아 있을거야. 이걸 사용한다면 브라더원에 접근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

 

“물론, 딕이 이곳에 넘어오더라도 수사해야하는 건 다르지 않으니까.”

 

 나는 단지 그 일을 당신 혼자서 하지 않길 바랄뿐이야. 어려진 내가 밖으로 나가봤자 고담에 혼란만 더 가중시킬 테니 함께 수색하는건 지양해야하잖아. 그렇담 나는 안에서 당신을 백업할 수 밖에 없고.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만들어낸 것에 있는데 당신만 짊어지는 것은 수지에 맞지 않지. 그렇다면 적어도 당신의 부담을 덜고 싶을 뿐이야. 물론 이건 개인적인 이유고 당신의 수색에 방해하지 않을게, 언질이라도 해준다면 난 당신의 수색에 최대한 백업할거고.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만 할거야.

 

“…맘대로해. 어디 로빈들이 남의 말을 잘 듣는 자경단원도 아니었고.”

 

“고마워.”

 

 자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일단 올라가자고. 네 성격에 아직 식사도 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 뭐라도 차려줄게. …당신이? 제이슨의 말에 팀이 따라 걷던 걸음까지 멈추고 반문했다. 뭐, 왜? 늬들이 주방출입 금지당해도 유일하게 들어갈 수 있었던게 나야. 간단한 요리정도는 할 수 있다고. …그렇겠지만, 당신이 날 위해 해준다는게 믿기지가 않아서. 그래? 그래도 그때 쯤엔 꽤 해주지 않았나? 뭐, 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대접한다고 해봐야 찬장에 있을 레토르트 데워 주는 것 뿐이니까. 우리 ‘팀 버드’가 레토르트를 데워먹는 것 정도는 할수 있게 되었거든. 커피머신만 다룰줄 알던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그거 놀리는 말이지? 말 그대로 커피머신만 다룰 줄 아는 팀이 불퉁하게 말하면 제이슨이 낮게 웃었다. 농담이야. 오늘밤엔 레토르트로 때우고 다음날부터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줄테니까.

 

 ‘팀’이 레토르트로 때운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닌듯 제이슨에게 이끌려 간 주방 찬장에는 많은 레토르트 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찬장가득한 것을 보며 제이슨이 표정을 구겼다. 시켜먹기 귀찮으면 레토르트라도 먹으라고 했더니 하나도 안챙겨먹었네. 아니 몇번은 찾았나? 제이슨이 그것들의 수를 세며 가늠했다. 그가 채워놓은 것인지 수량을 세 그의 끼니를 알아보던 제이슨이 곧 그만두고 적당히 하나, 아니 두개를 꺼내들었다. 몇번이 되었든 제이슨의 성에는 차지 않았을 테니 현명한 선택이었다. 팀보, 너는 저렇게 되지 마라. 그리 충고하면 팀이 어색하게 웃었다. 미래의 자신을 가리키며 저리 되지 말라고 충고하니 어쩔줄 몰라하는게 바로 보였다. 그러나 제이슨은 그 말을 다시 담을 생각은 없었다. 여러방면으로 보나 현재의 팀 드레이크는 본받을 만한 자경단원이 되지 못했으니까.

 

 그날 동이 틀때까지 제이슨은 팀의 곁에 있어주었다. 갑작스럽게 환경이 바뀐 그를 배려해주듯 팀이 같이 자길 권하면 선뜻 그것을 이루어주었다. 팀이 잠들고 해가 뜰때쯤 저택을 나설 준비를 하는 제이슨, 레드후드에 팀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려 하면 레드후드가 만류했다. 다녀올테니 좀 더 자둬, 너 안그래도 수면부족이잖아. 팀이 다시 잠들게끔, 팀을 두어번 토닥여준 레드후드가 창 밖으로 나가면 그새 잠이 깬 팀이 마른 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이러니까, 내가 포기를 못하는 거잖아.

 

 떠나기 전의 그의 당부대로 제이슨은 다시 웨인 저택으로 돌아왔다 양 손에 식재료를 한가득 들고서. 이 많은 걸 누가 다 먹어. 팀이 질색하며 받아들려 하면 제이슨이 거절하며 대답했다. 나랑, 너. 현재의 ‘팀 드레이크’보다 키우는게 내 목표니까 닥치고 먹고 자라. 내가 있는한 너 늦게 자는 꼴 못봐. 하지만 고담은-…. 요즘은 범죄율이 낮고 혹 호출이 오더라도 내가 갈거니 넌 자. 팀이 억울한 듯 쳐다보았으나 제이슨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팀이 할일을 위해 케이브로 내려오면 그 사이 레드후드로 돌아온 제이슨이 그를 반겼다. 왔냐. 벌써부터 가려고? 빠를 수록 좋지. 네가 여기 오래 남아있어봤자 좋을 일 없어. 낮은 들킬 우려가 있긴하지만, 늦은 저녁과 달리 시야 확보가 좋으니까 놓친게 있다면 이번엔 찾을 수 있을 거야. 배트사이클에 몸을 싣는 제이슨에 팀이 아쉬운 얼굴을 했으나 곧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이것조차 그를 위한 일이니 서운해 해서는 안됐다. 다녀와, 몸 조심하고. 제이슨이 떠나고 팀은 배트 컴퓨터를 돌아보았다. 이제, 그의 전쟁을 시작할 준비를 해야했다.

 

 제이슨은 그 이후로도 ‘팀’의 흔적이 있는 곳을 찾아가 수색했고 그가 찍어온 사진이나 단서들로 함께 토론하는 과정을 가졌다. …브라더 원쪽은 어때? 이야기를 나누던 제이슨이 물으면 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은 반대했으니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시작했다면 알아둬야지. 혹시 알아 브라더원이 실마리를 쥐고 있을지?

 

“…생각보다 키워드를 찾는게 쉽지 않아.”

 

 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 말대로 브루스의 브라더 아이를 토대로 만들어서 그런지 큰 틀은 그에서 벗어나지 않아. 그게 외려 해결 할 수 있는 탈출구가 되었지, 브루스는 타인을 믿지 않는 만큼 본인을 믿을 수 없었고 브라더 아이의 약점 또한 기록해 두었어. 다만 거기까지 도달할 보안코드가 해결되지 않아. 알프레드의 충고에 따라 뭐든 배트케이브에 백업해뒀던 브루스랑은 달리 아무것도. 그래도 무언가 남겨두지 않았을까해서 그의 일기장과 기록들을 살펴보고 있었어. 아주 작은 단서라도 그게 우릴 인도할 이정표가 되어줄테니까.

 

“당신쪽도 그리 순탄하진 않나봐?”

 

“그래, 어려울거라고는 예상했던바지만. 아무래도 배트맨에게 놀아난거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팀이 물으면 제이슨이 한숨을 푸욱 내쉰 후에 말을 이었다. 현장에 남은 단서가 거의 없어. 물론 증거를 인멸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현장 자체에 훼손 된 것이 거의 없어. 팀이 단서를 찾기 위해 뒤졌다면 다른 장소에 비해 먼지가 덜쌓인 곳이라고 있어야하는데 그 정도가 같거나 비슷해. 그러니까 팀이 일을 꾸민 것은 훨씬 이전의 것이고 날 부러 불러오기 위해 연막차 이곳을 한번더 들린거지. 아무것도 건들지 않았으니 단서가 없고, 예전에 남았던 것도 이제는 없어졌을거야. 그래서 놈이 더 태평하게 나올 수 있었던 거겠지. 남은 곳도 둘러볼 예정이긴 하지만 비슷하겠지. 배트맨이 처음 그곳을 습격했을 때의 기록이라도 제대로 남아있다면 좋으련만, 케이브든 어디든 남아있지 않아서.

 

“생각해봤는데 브라더 원은 고담 전역을 감시하고 있잖아? 이곳은 괜찮아?”

 

 “글쎄, 여기에 대해선 설명을 들은 적이 없긴 하지만 괜찮을테지.”

 

 배트맨은 브라더원에게 꽤 많은 권한을 허락했어 자체적으로 범죄자들을 소탕할 수 있는 권리를 말이지. 개인의 판단을 존중했으니 그도 존중 받으려할테지, 브라더원이 여기서 만들어진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여긴 불가침 영역일거야. 인공지능인 그가 자신의 프로세스에 접근하려던 널 그냥 두는 것만으로도 예상할 수 있지. 그건 갑자기 왜? 그건 내가 만들었다고 하잖아, 그럼 그 행동의 기반은 나와 닮았을거라고 생각해. 나라면 불가침 영역이라고 지정해둔들 그에 대한 자료를 좌시하진 않았을거라고 생각해서. 하지만 당신말도 일리가 있어, 그의 보안체계를 건든다고 말을 했음에도 배트케이브에 변변한 공격조차 없으니까.

 

그렇지만 네 말도 의심의 여지는 있어. 팀이라면 스스로를 객관화 하기 위해서라도 해뒀겠지 다만-… 브라더원도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 숨겨두었다면? 그렇담-… 당신이 찾고자 하는 정보도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아. ‘팀’은 증거를 인멸하고자 했지만 그 팀과 닮은 브라더원은 그 정보를 남겨두고자 했겠지. 가장 은밀한 곳, 팀도 브라더 원도 그 곳에 숨겨두었을 거야. 좋아, 그러면 그쪽을 중점으로 파볼게.

 

“미안하다, 내가 해결할 것처럼 굴어놓고 네게 기대서.”

 

“아냐, 전부 날 위한 거잖아.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뻐,”

 

 그러나 브라더원에게 접속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므로 팀은 금새 표정을 굳혀 생각에 빠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슨은 어떠한 위화감에 고개를 기울였다. 생각에 빠진 팀의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다. 그의 모습에서 어떤 어설픈 것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에 빠진 팀이 하는 행동이었으니 무의식의 영역에서 펼치는 움직임이니 어색함이 있을리가. 그러나 위화감은 느꼈으나 무엇이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곧바로 느낄 정도로 명시적인 것이었으나 쉽게 파악할 수 없다니 우스운 일이었으나 확실히 그랬다.

 

“…? 왜그래?”

 

“아니, 밥이나 먹으러 갈까?”

 

 의심을 버리지 않는 것이 배트맨 패밀리의 덕목중 하나긴 했으나 굳이 그것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하나의 위화감일 뿐이지 그가 의심스러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무엇이든 속단하기에는 이른 단계였다. 제이슨의 제안에 팀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그렇게 됐던가? 벌써가 아니야, 너 점심은 먹었어? 내 생각엔 안먹었을 거 같은데. …오, 세상에 그렇게나 시간이 지났던가 조금만 뒤에 먹으려고 했는데. 씁 조그만게 안먹으면 배트케이브 금지시킬줄 알아. 그 권한은 내게 있는거 아니야? 내가 배트맨이라며. 지금의 넌 아니지. 연장자로서 너의 출입을 불허한다. 챙겨 먹을게, 챙겨먹는다니까? 팀은 배트케이브의 출입만큼은 싫은지 제이슨에게 피력했고 제이슨은 그것을 웃으며 넘겼다. 어짜피 배트 컴퓨터를 팀만큼 잘 다룰 자신은 없었으므로 팀의 출입을 금지할 생각은 없었다, 하나의 위화감으로 움직일 만큼 제이슨은 속단하지 않았다. 이대로 두는 것이 더 도움이 되리라.

 

 며칠 뒤 팀은 브라더원에 접근하는 것을 성공했다. 키워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밖에서 더이상 얻을 것이 없던 제이슨이 케이브 안으로 돌아오며 함께 고민했고 대화중에 무언가 깨달았는지 홀린듯 배트케이브에 다가가 브라더원을 해킹하는데 성공했다. 제이슨으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키워드라 감탄하며 팀을 쓰다듬었고 팀은 그것이 썩 싫지 않는 듯 얼굴을 붉혔다. 머쓱한 제이슨이 손을 거두려 하면 그 곳을 잡아 조금더 요구하는 팀이 귀엽게 보여 기분이 묘했다. 생각해보면 팀은 간혹 그런 모습을 제게 보이긴 했다. 그런 팀이 변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제이슨의 부상 이후? 아니-… 팀은 배트맨이 된 후부터 그런 모습을 지워가기 시작했었다. 배트맨이 되었으니 아기새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는 없었겠지. 조금 입맛이 썼다.

 

 그러나 접근을 성공했다 뿐, 제이슨이 원하는 정보를 찾기란 어려웠다. 브라더원이 꼭꼭 숨겼고 그 자신조차도 모르는 정보가 숨겨져있는 곳을 그리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 팀에게만 맡겨두기 미안하기에 제이슨 쪽에서도 접근하려고 했으나 팀이 그를 만류했다. 한번 성공했으니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들킬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이슨은 팀이 배트케이브에 머무는 시간을 엄밀히 관리하며 그가 무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전부였고 제이슨이 휴식 기간을 선포했음에도 팀은 종종 배트 컴퓨터 앞에 서곤 했다.

 

“흐음-…안풀리네.”

 

“뭐가?”

 

 배트 컴퓨터 앞에 선 팀의 혼잣말을 제이슨이 받으면 팀이 화들짝 놀랐다. 제, 제이슨?! …내가 휴식시간에는 배트컴퓨터 앞에 서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 그게. 제이슨의 으름장에 팀이 살살 눈을 피했다. 하, 그래 뭘하고 있었는지 들어나보자. 제이슨이 한숨을 쉬고 팀의 행동을 물으면 팀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배트맨이 주었다고 하는 자체 판단권한을 다시 거둬갈 수 있을까 해서 알아보고 있었어. 고담의 눈 덕에 범죄율이 낯아졌다고는 하지만 사생활 침해를 하기도하고, 우리처럼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 원격 사격이니 데미지를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할테고 지금이야 배트맨에게 보고한다지만 이후에는 영역을 넓혀 스스로 다 해결하려 들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진전은 있었고? 제이슨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배트맨은 제 판단을 확신했나봐, 브루스 처럼 비상시에 대해서는 준비해 놓지 않은 듯해. 돌아가기전에 이거라도 해결하고 싶었는데.

 

“왜?”

 

“옳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배트맨 덕분에 난 하지 않을 고생을 해야하기도 했고, 돌아온 배트맨이 골머리를 썩힐거라고 생각하면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서로 털어냈다고는 하지만 팀은 제이슨에게도 제 몫을 돌려주었던 이였다. 그 성격이 어디가진 않았을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해. 제이슨의 말에 팀이 물었다 정말? 걔 덕분에 나도 이러고 있잖냐, 내 몫까지 사고쳐주면 더 좋고. 제이슨의 수긍에 활짝웃던 팀이 슬며시 물었다 있잖아-…

 

“안돼.”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 줄 알고?”

 

“무슨 말을 하려 했는데?”

 

“음, 키스?”

 

“안돼.”

 

“볼에 하는 건데도?”

 

안돼.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그럼 안아보는 건? 그것도 안돼. 안아보기만 하는 것도 안돼? 안돼. 흔들리지 않는 대답에 팀이 눈매를 좁혔다가 풀었다. 어쩔 수 없지. 팀이 담백하게 포기했다. 제이슨은 그런 팀에게 눈길을 주다 배트 컴퓨터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을 가득 채운 글자들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는 일은 막지 않을테니까 쉴땐 쉬어두도록 해. 여차하면 네가 나서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니까. 내가? 팀이 반색하며 돌아보면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 일이란게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배트 케이브 안에서 적당히 몸을 푼다고 해도 실전과는 또 다를테고. 

 

며칠 후 팀은 기어이 브라더 원이 숨겨둔 파일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지지리도 말을 듣지 않는 아이는 제이슨의 경고에도 며칠 밤을 세워 찾아낸 것이다. 눈 밑의 다크서클을 확인한 제이슨이 헛웃음을 지었지만 제게 도움이 되고 싶어 그랬다는 말에 잔소리가 쑥 들어갔다. 팀의 추측대로 브라더원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배트맨이 무엇을 연구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케이브에 구비해둔 약물은 전부 사용되어 없지만 다행이도 그것의 베이스가 되는 약물은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제이슨은 곧바로 그것을 구하기 위해 일어서면 팀이 제이슨을 붙잡았다.

 

“나도 가고 싶어.”

 

“이건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을텐데.”

 

“하지만 이건 ‘내’가 벌인 일이잖아.”

 

 엄밀히 말하면 네가 벌인 일은 아니지. 미래의 네가 했다고 네가 반드시 같은 일을 한다고는 할수 없어. 그렇다고 해도 너는 ‘아직’ 저지르지 않았잖아. 네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하지만 그가 ‘팀 드레이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 내가 팀 드레이크 이상 책임은 피할 수 없어. 제이슨은 팀을 바라보았다. 눈을 빛내며 제이슨의 눈을 피하지 않는 그는 분명 제이슨이 반대하더라도 기어코 그를 쫓아오겠지. 좋아, 대신 배트맨 차림으로는 갈 수 없어. 레드로빈 복장이라도 찾아서와. 제이슨의 허락에 금방 찾아오겠다고 선언한 팀이 허둥지둥 저택으로 올라갔다. 브라더원은 더이상 팀이 협력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구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혼자서 움직여도 신중해야하기에 팀의 합류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요 며칠 제이슨을 어지럽게 하던 의심은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 준거야?”

 

“기다려 준게 불만이야?”

 

 제이슨의 문자 팀이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아니, 제이슨은 날 데려가는 데 회의적이었으니까 날 떨어뜨릴 구실로서 옷을 가져오라 그런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거든. 그렇다고 해도 따라갈 생각이어서 코스튬을 챙기러 간거였고. …그럴 생각도 없던 건 아니었지만, 공연히 얼 떨구고 갔다 불안해 하느니 처음부터 데려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야.준비됬으면 가지, 네 고담의 눈이 시야를 넓혀서 신중하게 움직여야해.

 

 

 

“.....”

 

 고담시의 야경을 보는 것은 제이슨으로서도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수색작업이 허탕을 친 이후에는 팀의 경과만 기다리고 있었기에 나갈 일이 없었으니까. 찬 밤공기를 맞으면 적당한 긴장감이 제이슨의 정신을 맑게 만들었다. 곁에 있을 레드로빈에게 시선들 돌리면 딱딱히 굳은 얼굴을 보였다. 그건 제이슨이 여태까지 보아왔던 레드로빈의 얼굴이 아니었고 제이슨은 이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가자.”

 

  레드로빈에게 다른 말을 꺼내는 대신 재촉했고 레드로빈은 레드후드의 인도에 따라 움직였다. 그를 방해할 생각은 없는 듯 조용히 지시만 따르는 레드로빈을 흘깃 살피다 정면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숨기든 도착하면 알게되리라.폐공장이 된 건물 안으로 숨어들어온 제이슨은 미리 파악해두었던 도면대로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그럼 알수 없는 액체가 보관된 투명탱크 하나와 컴퓨터 한대가 그리고 그 주변을 빽빽히 채운 서류들이 보였다. 종이 뭉치들을 발견한 레드로빈이 그것을 주워들면 레드후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홀스터에서 총을 꺼내 레드로빈을 겨누었다. 레드후드? 뭐하는 거야, 왜 날-… 당황스러운 듯 흔들리는 눈동자에 레드후드는 헛움음 소리를 내었다.

 

“뭐하는 짓이냐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레드로빈. 아니…배트맨이라고 불러야할까?”

 

 레드후드의 발언에 레드로빈의 입가가 파들파들 떨렸다. 레드 후드,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난-…. 오해는 무슨 오해. 내가 겨우 단편적인 것들로 널 의심한다고 생각해? 의심이 아니라 확신했기에 이러는거야. 아, 물론 네 연기는 무척이나 뛰어났어. 한순간이나마 난 네가 어려진 줄 알았지뭐야. 

 

 처음에 위화감을 느낀건 배트케이브에서였어 네가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 모습이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었어. 네 모습을 보고 느낄 정도로 직관적인데 아무리 살펴도 이상한 모습이 없었거든. 그래서 기분탓인가 하고 생각했지. 사실 이상한 건 없었어, 네가 네 행동을 한 것인데 이상하게 보일리가 있나. 다만-… 네 제스쳐가 시기에 맞지 않았을 뿐. 너는 최대한 고민에 빠진척 연기했기 때문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거야, 네가 취한 자세는 레드로빈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으니까.

 

 일전에 스킨십을 요구하는 것도 그래, 은근 슬쩍 요구하는 건 지금의 너에 가깝지. 레드로빈은 아니었어. 걔는 오히려 그걸 피하는 쪽이었지 혹시라도 선을 넘지 않도록. 너는 그때의 내가 얼마든지 떠날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블랙게이트에 집어넣을 방법도 몇까지 생각해놨을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한들 형제? 그 이상은 아니었고, 넌 내게 털어놓을 생각도 없었어. 그런 애가 그걸 밝혔다고 아무 감정이 없는 나한테 요구한다고? 그럴리가. 그건-…내게도 감정이 있다고 확신하기에 했던 행동이야. 천하의 팀 드레이크가 확신도 없이 움직일리가 없지.

 

마지막, 네 얼굴. 이것도 사실 배트맨이 된 이후에 생긴 버릇이야. 밖으로 나왔을 때, 그리고 고담을 내려보고 있었을 때. 배트맨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 그래, 이건 내 주관적인 판단이긴 해. 하지만-…네가 배트맨이 막 되었던 시절부터 배트맨으로 거듭나기까지 함께 활동했던 나야. 내가 어떻게 널 구분하지 못하겠어?

 

“…하, 이걸 기뻐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레드후드의 말에 당황하던 레드로빈의 얼굴이 싹 걷혔다. 당신이 날 알아본 것에 기뻐야하는 걸까, 날 속인 것에 화를 내야할까. 말은 바로해야지, 팀. 속인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날 이곳까지 이끌어서 어쩔 속셈이었어? 아무것도. 이건 순전히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하는 널 위한 호의였어 제이슨. 네가 이걸 알아내어 날 원래대로 만들든 그냥 이대로 두든 네 선택에 맡길 생각이었어. 어린 팀은 어딜 봐도 네가 바라는 내 모습이었잖아? 그런데도 날 되찾으러 하는 네 모습에 기쁘기도했고, 그만큼 고담이 우선되는게 싫기도 했어.

 

"솔직히 말해봐, 제이. 내가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팀 드레이크길 바란 적 없어?"

 

 너는 브라더원의 존재를 반기지 않았잖아. 그 애는 네가 너와 같은 곳을 바라는 아이였을텐데 한번도 바라지 않은 적 없어?…왜없겠냐, 네 말대로 내가 바라는 넌데. 레드후드가 입을 열었다. 왜 끝까지 널 되돌리려 했냐고? 고담을 위해서라면 외려 어린 날의 너인게 맞지. 그게 배트맨이, 브루스가 바라던 고담의 평화에 가까울테니까. 그럼에도 널 돌리려 한건-… 네가 그렇게 된 데에 내 책임이 있기 때문이야. 내 불행을 너는 네 탓이라고 여겼지만 너와 함께 하기를 선택하고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건 나야. 네가 그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그런 일을 벌였다면 그것 또한 내가 감당해야할 일이지.

 

 내가 얼마나 너한테 뒤통수를 맞았는지. 내게 흘린 정보 그거 다 조작된거더라? 훨씬 전에 작업했던걸 최근에 이루신척 하느라 꽤 고생하셨어? 말이 나온김에 물어나보자, 대체 언제부터 이런걸 계획한거야? …당신이 날 떠난 직후부터. 제이슨의 물음에 팀이 소리를 내었다. 그날 난 당당히 당신을 찾아낼거라고 했지만 불안했어. 내가 싫어진거면 어쩌지? 그래서 나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거라면? 그건… 그건, 당신이 의식을 찾지 못하는 날과 같았어 끔찍했지. 그런 일은 없었어야했어. 하지만 생겨버렸고 나는 그걸 되돌릴 방법을 생각해야했어.

 

 당신을 어리게 만드는 방법도 생각했지, 하지만 결국 어려져도 당신은 결국 당신일거고. 브루스가 아닌 난 당신이 끝까지 놓지 못할 존재가 되긴 힘들다고 생각했어. 내가 어려지는 것 또한 생각했지. 하지만 난 배트맨이었고-… 시기만 다를 뿐 당신에게 또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같은 선택을 하고 말겠지. 그래선 안됬어, 그래선 난 당신을 떠나보내기만 할테니까. 그래서 그랬어. 당신이 원한다면 어리숙한 팀 드레이크를 언제까지나 연기하면서 당신곁에 머물기 위해서. 해독제가 없고 정보도 없다면 방법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 모든게 네 계획이었다고? 내가 네 병을 터트린걸 포함해서? 당신이 일을 쳐줄거라곤 생각했지만 그 방법까진 내가 알수 없지. 

 

 당신은 내 생각보다 더 다정했지. 변해버린 주위에 당황해있을 날 배려해 같이 있어주었어. 잠이 들때까지, 잠이들고 나서도. …첫날, 난 당신이 돌아가도 개의치 않았을거야. 당신은 웨인 저택을 좋아하지 않았고 굳이 곁에 있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저, 당신 곁에 자리 하나만 내어준다면 바랄게 없었지. 하지만… 당신은 내게 돌아오겠다고 했어 그럴 의무는 조금도 없는데 순전히 날, 걱정했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포기할 수 있겠어. 당신을 놓을 수 있겠어.

 

"제이, 난 아직도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당신이 겪을 수 많은 위기에서 당신을 지키고 싶고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다소 과격한 대응이라도 어쩔수 없지. 당신이 늘 말하는 본보기로서의 모습도 필요하잖아? 이런 날 변해버렸다고 느낄수도 있고 당신이 망쳐버렸다고 느낄 수도 있지. 그래, 당신의 죄책감의 발로라도 좋아. 아니면 고담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건 어때? 당신이 내 곁에만 있다면 나는 당신이 무슨 이유에서 있든 감사히 여길거야. 응?  …난. 제이슨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으니까 다시 고개를 들면 도미노까지 벗어든 팀이 보였다. 제이슨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고담엔 배트맨이 필요해."

 

"그렇지."

 

"그리고 배트맨인 넌, 내가 필요하고…"

 

"맞아, 난 당신이 필요해."

 

"또, 난 마침 반 병신인 날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하지."

 

 툭. 레드후드가, 제이슨이 손이 쥔 총을 맥 없이 떨어뜨렸다. 그것이 어떠한 선택인지 몰라 가만히 그를 쳐다보면 제이슨이 입을 달싹였다. …가져가. 네가 필요한 것, 네가 원하는 것 전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필요로 하는 걸 이뤄내. 결단을 내리면 다음 행동은 의외로 쉬웠다. 제이슨은 이번엔 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안가져가고 뭐해? 제이슨의 재촉에 팀이 홀린듯 제이슨의 손을 잡았다. 살짝만 힘을 주어 당기면 제이슨이 속절없이 따라왔다. 팀은 제이슨을 품에 넣으면서도 눈을 끔벅이면 제이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돼. 그게 무슨 말인가 쳐다보면 그가 말을 이었다. 네가 하고 싶어했잖아. 키스도, 포옹도 더한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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